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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킹 만 사건<베트남전 미군개입 촉발한 북베트남 어뢰정의 미 함정 공격>' 은 조작

미주중앙

입력

공개 첫날 닉슨도서관 표정

1971년 6월13일 '펜타곤 페이퍼'가 공개되자 미국 전역이 충격에 빠졌다. 당시 국방부 일급 기밀문서였던 펜타곤 페이퍼를 뉴욕타임스 기자에 넘긴 인물은 국방부 군사분석 전문가였던 대니얼 엘스버그 였다. 1972년 4월1일 엘스버그가 필라델피아 해리스버그 지역 한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AP]

1971년 6월13일자 뉴욕타임스 1면 중앙에 실린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내용. 왼쪽 상단 기사에는 당시 닉슨 대통령의 딸 트리샤의 결혼식 사진도 함께 실렸다.

닉슨 도서관에서 방문객들이 펜타곤 페이퍼를 유심히 보고 있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미국인들은 이날 이후 베트남전쟁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1971년 6월13일 뉴욕타임스가 '펜타곤 페이퍼'란 기밀서류를 입수해 기사화 했다. 이 서류에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의 구실이었던 '통킹 만 사건'이 북베트남의 도발이 아니라 미국의 조작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1964년 8월 북베트남 어뢰정이 공해상에서 미국 구축함 매독스호를 선제공격해 미군이 베트남전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 함정은 '데소토'라는 정보수집 함정이었으며 북베트남 어뢰정이 미군 함정을 공격했다는 증거도 없다는 것이었다. 히피 머리에 나팔바지를 입은 청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반전' 데모를 벌였다.

40년이 지났다. 처음 뉴욕타임스가 '펜타곤 페이퍼'를 공개한 날을 기념해 '닉슨 도서관'이 7000페이지에 달하는 기밀문서 전문을 공개했다. 지금까지 일반인들은 기밀서류의 일부분만 열람할 수 있었다. 닉슨 도서관은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도 기억될 필요가 있다"라는 판단에서 공개를 결정했다고 한다. LA에서 남동쪽으로 40마일가량 떨어진 소도시 요바린다에 위치한 닉슨 도서관을 가봤다.

13일 오후 1시. 닉슨 도서관 입구는 몰려드는 방문객들로 인해 북적이고 있었다. 표를 사기 위해 줄은 선 수십 명의 방문객들 뒤로 포스터에 적힌 'Declassified(기밀해제)'라는 검은 글씨가 한눈에 들어왔다. 뉴욕타임스의 보도 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전문이 공개된 베트남전 관련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 안내 포스터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레노 듀니엘(80.리버사이드)씨가 휠체어에 탄 채 포스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70년대 당시 버지니아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는 그는 "당시 펜타곤 페이퍼가 폭로되면서 모든 미국의 관심이 문서 내용에 쏠리게 됐다"고 말했다.

닉슨 도서관은 닉슨 대통령 재임시절의 사진과 각종 연설 영상들로 채워져 있다. 도서관 정면에 배치된 '펜타곤 페이퍼'는 파란색 바탕 위에 '미국과 베트남과의 관계 1945-1967'이라는 제목과 함께 '1급 비밀(Top Secret)'이라는 글씨가 아직도 분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날 펜타곤 페이퍼 전시관에는 미국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통킹 만 사건'의 진실을 보려는 관람객들이 하루종일 몰려 들었다.

짐 노일런(64)씨는 "문서가 공개될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친구들과 나팔바지를 입고 수백 명의 사람들과 할리우드 거리에서 반전시위를 했던 기억이 난다"며 "반전시위는 단순히 전쟁에 대한 반대뿐 아니라 펜타곤 페이퍼를 통해 드러난 사실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담겨 있기도 했다"고 말했다.

펜타곤 페이퍼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로사노 에일러(61.샌디에이고)씨는 "이 문서는 베트남전이 장기화되면서 각종 문제들이 드러나던 미국에 다시 한번 사회적 경종을 울리고 많은 것을 건강하게 변화시켰다"며 "연이은 폭로를 막으려던 닉슨 정부와의 싸움에서 언론이 승리하고 전쟁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전시관 한 편에서는 또 베트남 전쟁의 의미를 찾으려는 베트남계 이민자들도 눈에 띄었다.

가족과 함께 전시관을 찾은 베트남계 이민자인 존 탐펑(42)씨는 "우리 아이들은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났지만 과거 베트남전에 대해 올바른 역사적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 주고 싶었다"며 "그동안 미국은 '세계의 경찰'로서 많은 일들을 해왔지만 어쩌면 베트남전에 개입하면서 그러한 역할을 조금씩 잃어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요바린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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