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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목요문화산책] 잡스에게 ‘카르페 디엠’은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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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스티브 잡스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2005년 6월 12일)’

지난주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 병가 중에도 아이클라우드(iCloud)와 우주선 같은 새 사옥을 소개하기 위해 연달아 공개석상에 섰다. 부쩍 야윈 얼굴과 대조되는 열정적인 프레젠테이션은 그가 2005년 스탠퍼드대에서 한 연설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라고 자문한다고 했다. 또 “여러분의 시간은 유한하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허비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89)’에서 키팅 선생도 학생들에게 비슷한 말을 했었다. “왜 시인은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모으라고 했을까? …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을 것이기 때문이지.”

키팅(로빈 윌리엄스 분)이 언급한 시는 17세기 영국의 시인 로버트 헤릭(Robert Herrick·1591~1674)이 지은 ‘처녀들에게, 시간을 소중히 하기를’이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모으라,

 시간은 계속 달아나고 있으니:

 그리고 오늘 미소 짓는 이 꽃이

 내일은 지고 있으리니.

그림 ①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모으라(1908년 버전),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 작, 캔버스에 유채, 61.6×45.7㎝, 개인 소장

 요즘처럼 여기저기에 장미가 눈부시게 피어 있고 그중 지기 시작하는 장미 한두 송이가 마음을 아릿하게 하는 계절에는 헤릭의 시구가 특히 와 닿는다. 문학적 소재를 즐겨 그린 빅토리아시대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도 이 시구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지 그 첫 행(원어로는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을 제목으로 한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

 그중 한 작품(그림 ①)을 보면 중세풍 의상을 입은 처녀가 탐스러운 분홍색 장미를 은항아리에 가득 담아 들고 있다. 그녀의 뺨은 이 장미와 똑같은 빛깔을 띠고 있다. 하지만 곧 장미 꽃잎은 고운 빛을 잃고 쪼그라들 것이고, 그녀의 뺨도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다. 또 한 작품(그림 ②)에서는 처녀들이 맨발로 들판을 밟으며 장미를 따 모은다. 그들은 풀과 꽃의 신선한 향기를 맡고, 뒤로 흐르는 시냇물의 노래를 듣고, 맑은 바람과 발그레한 초저녁 햇살을 받는다. 활짝 핀 장미처럼 아름답고 풍성한 순간이지만 이 순간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림 ②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모으라(1909년 버전), 워터하우스 작, 캔버스에 유채, 100×83㎝, 오돈 와그너 갤러리, 토론토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은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모으라”는 말이 라틴어 격언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영어로는 “Seize the day”와 같은 뜻이라고 알려 준다. 모두 “오늘을 잡아라”는 뜻이다. 그는 말한다. “카르페 디엠, 오늘을 잡아라, 제군들. 여러분의 삶을 범상치 않게 만들어라.”

 그런데 어떤 식으로 오늘을 잡으라는 것일까? 사실 이 말은 천차만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누군가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고 해석할 것이고, 누군가는 ‘내일 죽을지 모르는 인생, 오늘 쓸데없이 놀지 말고 뭔가 중요한 일을 하세’라고 해석할 것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 “카르페 디엠”의 기원이 된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BC 65~BC 8)의 ‘송가 I-XI’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자.

 현명하라, 포도주를 걸러 만들라, 길고 먼 희망을 짧은 인생에 맞춰 줄이라,

 우리가 말하는 동안에도, 질투 많은 시간은 이미 흘러갔을 것;

 오늘을 잡아라, 내일을 최소한만 믿으며(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포도주를 만들어 마시고 원대한 희망을 축소하라는 걸 보니 ‘젊어서 노세’ 쪽에 가까워 보인다. 더구나 호라티우스가 분방한 연애시도 많이 남겼던 걸 고려하면 말이다. 사실 헤릭의 시 ‘처녀들에게…’도 수줍어하지 말고 부지런히 연애해 결혼하라는 충고로 끝난다. “지금 장미를 따 모으라”는 연애에 소극적인 여인을 유혹하는 시에 관용구로 등장하곤 했다.

그림 ③ 비너스 탄생(1485~1486), 산드로 보티첼리(1446~1510) 작, 캔버스에 템페라, 172.5x278.5㎝,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이 경우 장미는 쾌락의 상징이다. 생각해 보면 장미는 고대에 방탕한 연애의 여신 비너스에게 바쳐진 꽃이었다. 초기 르네상스 대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유명한 ‘비너스 탄생’(그림 ③)에서 조가비 위의 여신에게 날아오는 분홍색 꽃들도 다름 아닌 장미다.

 하지만 예로부터 장미가 상징하는 것은 매우 복합적이었다. 중세에는 장미가 순결한 동정녀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졌다. 신비주의 비밀결사 ‘장미십자가’회에는 장미가 종종 영적인 각성을 뜻했다. 그래서 “장미를 따 모으라”는 때로 정신적 즐거움의 경지에 오르라는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카르페 디엠”을 처음 외친 호라티우스는 흔히 ‘쾌락주의 학파’라고 불리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 학파가 추구한 것도 사실 육체적·감각적 쾌락이 아니라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통해 얻는 정신적 쾌락이었다. 호라티우스가 ‘송가’에서 말한 것은 출세 등 찬란한 내일에 대한 욕망으로 앞만 보고 질주하거나 막연하게 기다리면서 오늘을 무미건조하게 보내지 말고 오늘의 소박한 즐거움도 챙기라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무절제하게 놀기만 하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무절제에 대한 경고를 담은 시를 쓰기도 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의 경우에는 “카르페 디엠”을 더욱 적극적인 행위로 해석한다. 그는 보수적인 명문 고등학교에서 대학 진학을 위한 틀에 박힌 교육에 짓눌려 있는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진정 자신들이 원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을 찾도록 격려한다.

 그런 것을 일찌감치 찾아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 또 현재를 즐기는 사람들 중 하나가 앞서 언급한 잡스일 것이다. 그가 하는 일은 그에게 쾌락인 동시에 소명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앞날을 위한 일과 현재의 즐거움이 수렴하는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두 가지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잡스의 말처럼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라는 자문에 “아니”라고 답하는 날이 너무 오래 지속된다면, 변화를 감행할 때가 된 것이다. 지금 만발한 장미를 지기 전에 따 모아야 하니까. 카르페 디엠.

문소영 기자

호라티우스, 브루투스 편에 섰던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그림)의 시를 보면 쾌락과 절제의 조화와 중용(中庸)을 강조하고 현실적이다.

그는 한때 공화제 유지를 외치며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 군에 가담했다. 브루투스가 패한 뒤 도망자 신세였으나 사면을 받아 로마로 돌아와 하급관리로 일하며 시를 썼다. 그러면서 그는 카이사르의 조카 옥타비아누스의 찬사를 듣게 됐고 그 자신도 로마에 안정을 가져온 옥타비아누스의 정책에 공감하게 됐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가 비서직을 제안했을 때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기회주의자라기보다 현실적이고 중용을 중시하는 인물이었고 그런 태도가 작품에 반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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