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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사나이’ 역이 탐난다는 예쁜 남자…니컬러스 홀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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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마커스, 12세. 미워할 구석이 딱히 눈에 띄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같은 반 아이들이 왕따를 시키면 굳이 말리고 싶진 않다. 인생을 다 안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녀석은 자살 충동이 있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며 친구들의 ‘약한 왕따’를 견뎌내고 있다.

니컬러스 홀트(22)는 마커스로 우리를 처음 만났다. 2002년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서 휴 그랜트와 호흡을 맞췄다. “당시엔 뭘 하는지 정확히 모르고 재미있기만 했어요. 휴 그랜트와 런던 레스터 광장에 갔을 때 사람들이 하도 몰려들어 놀랐죠.” 휴 그랜트는 외로움에 항복한 남성 윌 프리먼 역이었다. 사람도, 사랑도 믿지 않던 그에게 “사람은 섬이 아니다(No man is an island)”라던 소년이 마커스다.

홀트는 당시 열두 살이었지만 수십 년 동안 어둠을 몸에 새겨본 사람처럼 연기했다. 웃자란 듯했던 소년이 실제로 훌쩍 컸다. 이달 초 개봉한 영화 ‘엑스맨:퍼스트 클래스’에서 홀트를 못 알아봤더라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천재적 두뇌를 타고났지만 나중엔 온몸에 털이 돋아나는(비스트) 돌연변이로 나왔다. 1m93㎝의 청년이 화면을 휘저었다. 우리는 왜 이웃집 소년이 청년이 되는 것을 지켜보듯 홀트를 바라볼까. 지난달 영국 런던에서 그를 만났다.

런던=김호정 기자


‘어바웃 어 보이’ 출연한 지 9년이나 됐는데도 아직도 웃자란 소년으로만 기억하네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서부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말 타고 총 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역할

지난달 말 영국 런던. 한 손에 초콜릿 통을 든 니컬러스 홀트가 인터뷰 장소로 성큼 걸어 들어왔다. 청바지에 손바닥을 살짝 비빈 뒤 악수를 청했다. 단정하고 바른 태도다. 배우 아닌 대학생이라 해도 괜찮을 만큼 평범하다.

[게티이미지]

-사람들이 언제나 ‘소년’으로 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그러게요. ‘어바웃 어 보이’가 나온 지 9년이나 됐는데 말이에요. 아무래도 제 눈썹이 하도 특이해서 아무리 역할을 바꿔도 사람들이 ‘아, 그때 마커스로 나왔던 소년이네’라고 떠올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괜찮아요. 그 또한 저만의 캐릭터라 생각하거든요.”

-아역이 제대로 성장하는 게 어렵다고들 하죠.

“물론이에요. 학교 숙제는 늘 밀려 있고, 맡을 역할은 정해져 있죠. 하지만 스스로를 지키는 한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스스로를 유명인이라 생각하기 전에 연기를 하는 ‘직업’에 대해 인식하는 게 중요하죠. 그래서 제가 처음 유명해졌던 마커스가 멋있고 잘생긴 역할이 아니라 인간적이었던 데에 감사해요.”(웃음)

-고정관념을 깨고 해보고 싶은 역이 있나요.

“미국 서부영화를 꼭 해보고 싶어요. 이렇게 얘기하면 좀 안 어울린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말 타고 총 쏘는 ‘남자’ 역할을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롤 모델로 삼는 배우가 꼭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굳이 한 명을 정한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예요. 닮거나 따라 하겠다는 건 아니고, 서부극과 어울리는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서요.”

홀트는 인터뷰 도중 작은 초콜릿을 집어 입에 쏙 넣었다. 질문에 대해 생각할 때면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버릇이 있었다. 이렇게 평범한 20대 배우로 보이지만, 그는 연기 경력 15년의 ‘베테랑’이다.

그는 일곱 살 때 블랙 코미디 영화 ‘인티미트 릴레이션스’에 출연했다. 형이 출연하는 연극을 어머니와 함께 보러 갔던 세 살의 홀트를 한 연출가가 보고 발탁한 것. 불과 다섯 살에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전문학교에서 배우의 기초를 닦았다. 관객들이 마커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그의 성장을 응원하는 것은 홀트의 몸에 밴 듯 자연스러운 연기 덕이다.

위쪽부터 어바웃 어 보이, 싱글맨, 엑스맨

-어려서 연기를 배웠던 기억이 남아 있나요.

“아주 오래 가지고 갈 취미 정도로 연기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른 아이들이 스포츠를 하듯 말이죠. 그런데 영화를 보면 마법 같은 순간이 있잖아요. 내 얘기를 하는 것 같고, 지금 내 감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 놀라는 경험 말이에요. 그런 경험 때문에 꼭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연기하는 데 원칙이 있나요?

“평소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느껴보려 노력해요. 길에 서 있으면 많은 사람이 지나가죠. 어떤 사람은 슬퍼 보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즐거워요. 그들이 왜 그렇게 보이는지를 관찰해요. 얼굴이나 몸의 어떤 부분이 그 생각을 표현하는지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있어요.”

그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오디션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수많은 아역 배우 지망생처럼 고배를 마셨다. 썩 내키지 않아 하면서 응모해 합격한 오디션이 ‘어바웃 어 보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는 2007년 영국의 TV시리즈 ‘스킨스’에 출연했다. 10대 청소년의 성장ㆍ방황을 그려낸 드라마로 영국에서 100만 명 넘는 시청자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내용은 직설적이었고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약물 중독, 자살 등이 일상적으로 나왔다.

홀트는 또다시 실감나게 반항을 연기했다. 곧 TV쇼에 나와 “드라마의 내용은 내 실제 생활과 직접 연관성이 없다”고 말해야 했을 정도였다. 완전한 성인 신고식은 지난해 영화 ‘싱글맨’에서 열렸다. 대학 교수 콜린 퍼스의 상대역으로 나와 동성애ㆍ이성애를 넘나드는 묘한 대학생 역할을 했다. 젖살은 완전히 빠졌고, 팔다리가 길쭉해진 홀트는 영화의 시대 배경인 1960년대 패션 화보집에서 막 튀어나온 모델 같았다. 이 영화로 감독 데뷔를 한 디자이너 톰 포드는 자신의 브랜드 광고 모델을 홀트로 재빨리 교체했다.

-톰 포드의 영화는 아주 독특한 스타일이었죠.

“처음엔 그가 그렇게 유명한 디자이너인지 몰랐어요. 하지만 첫 촬영을 하고 난 후 깨닫게 됐죠. (웃음) 어떤 감독과 작업하든, 연기의 기본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감독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기본이 없으면 그때마다 맞추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번에 ‘엑스맨’ 시리즈를 하면서는 특히 많이 긴장했어요. 매튜 본 감독과의 촬영도, 괴물로 변하는 특수분장도 처음이었으니까요. 다른 캐릭터와의 관계가 워낙 복잡해 일일이 신경쓰는 것도 힘들었고요. 그럴 때마다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해요.”

-‘엑스맨:퍼스트 클래스’에서 처음엔 평화를 위해 힘쓰는 과학자로 나왔지만, 나중에 캐릭터가 급변하죠. 돌연변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역할로 바뀌는데요. 왠지 심오한 뜻을 담고 있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인간의 본성 같은 거요? 하하. 사실 처음 캐릭터를 봤을 때는 그런 의도를 생각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는 관객이 즐기면서 봐줬으면 하는 생각뿐이었어요. 온몸에 털이 돋아나 괴물이 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에서 심각한 생각을 하기엔 그 스릴이 아깝잖아요.”

얼핏 자연스럽고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오래 남는다. 마커스도 9년째 열두 살 소년으로 관객의 마음에 있다. 그는 현재 새로운 영화 작업 중이다. ‘엑스맨’을 제작한 브라이언 싱어가 감독하는 ‘잭 더 자이언트 킬러’다.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관객들은 또 한번 성장을 흐뭇하게 경험할 것이다. 마치 마커스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듯 말이다.

시시콜콜 배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엑스맨’

예쁜 남자 홀트는 잊어주세요, 털복숭이 괴물로 변신

왼쪽부터 케빈 베이컨, 제임스 매커보이, 마이클 패스밴더.



“내가 영화를 고르는 기준은 셋이다. 내 역할이 얼마나 큰가, 흥행이 될 것인가, 돈을 많이 주는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엑스맨에 대립하는 세바스티안 쇼 역할을 맡은 배우 케빈 베이컨의 말이다. 그간 독립영화, 무거운 작품에서 내면을 보여주는 연기를 주로 해온 그는 이번 영화에서 잔인하고 거칠 것 없는 악역을 소화했다. 그는 지난달 런던에서 열린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시사회 직후 자신의 영화 선택 기준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배역 선택의 드라마틱한 반전에 대한 변(辯)이기도 했다.

이처럼 이번 ‘엑스맨’의 캐스팅은 의외였다. 특히 ‘프로페서 엑스’로 나온 제임스 매커보이는 영국 특유의 고전적 드라마물에 출연하던 배우다. ‘비커밍 제인’에서 작가 제인 오스틴과 연인 사이로 나왔고, ‘어톤먼트’에서 지고지순한 사랑을 펼쳤다. 이번에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변종 유전자’를 가진 천재 교수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다. 몸을 날리는 액션도 마다하지 않았다.

독일과 아일랜드 혼혈의 배우 마이클 패스밴더 역시 ‘제인 오스틴물’에 잘 어울리는 배우다. 올해 개봉한 ‘제인 에어’에서 제인 에어의 연인인 귀족 로체스터로 출연해 시선을 끌었다. 이번 ‘엑스맨’에서 맡은 역할은 깊은 원한을 씻어내기 위해 자신의 초능력을 쓰는 매그니토 역이었다. 고전적 매력과 할리우드 액션물이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니컬러스 홀트 또한 기존의 ‘예쁜 남자’에서 벗어나 괴짜로, 급기야는 털북숭이 괴물로 변신했다. 배우에 대한 관객의 고정관념을 부수는 것 또한 이번 ‘엑스맨’의 임무였던 것으로 보인다.

니컬러스 홀트

-1989년 영국 버크셔주 워킹햄 출생
-1996년 첫 영화 ‘인티미트 릴레이션스’
-2002년 영화 ‘어바웃 어 보이’
-2007~2008년 TV 시리즈 ‘스킨스’
-2009년 영화 ‘싱글 맨’
-2010년 영화 ‘타이탄’
-2011년 영화 ‘엑스맨:퍼스트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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