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m짜리 철판 벽화, 또 하나의 남해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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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남 사천 LIG 손해보험 연수원에 완성한 회화설치 작품 앞의 이상남씨. 건물과 건물을 잇는 4m 높이 브리지는 3년간의 작업 끝에 ‘떠 있는 미술관’이 됐다.


“회화의 복권, 그건 제가 늘 붙잡고 있던 숙제였습니다. 사진·조각 등 여러 이미지 장르에 눌려 있는데다가, 특히 건축의 부속품으로 전락해 있지 않나요.”

 그래서였을까, 화가 이상남(58)씨가 대형 회화 설치 프로젝트를 계속한 것은…. 서울 역삼동 LIG타워, 안산시 경기도 미술관에 이어 경남 사천시 LIG 손해보험 연수원 건물을 화폭으로 삼았다. 이들 회화 설치는 연작 ‘풍경의 알고리듬(algorithm)’의 대형 확장판이다. 패널에 겹겹이 색을 입힌 뒤, 이 매끈한 표면을 깎으며 형상을 드러내 나가는 노동집약적 방식은 여전하다.

 그가 만들어낸 300여 가지 기호가 이 평면 위에서 유영한다. “내 작품은 자연이 아니라 인공에 대한 기억, 문명이 진화된 이들이 만들어낸 지점에서 시작한다”는 이씨의 ‘도회적 풍경화’, 곧 추상화다.

 연수원의 교육동과 숙소동 건물을 잇는 유리 통로에 만든 길이 36m짜리 벽화. 가로 2m, 세로 2.5m의 150㎏짜리 철판에 그린 그림 18개를 연결했다. “5.5t 철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작품이 휘지 않도록 뒤에 댄 철판의 무게까지 합치면 그렇습니다. 건물 사이에 떠 있는 이 브리지가 하중을 견딜지도 관건이었습니다.”

 이번 사천 프로젝트는 ‘풍경의 알고리듬’ 연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상남이 만든 인공의 풍경은 남해의 풍경과 마주하면서 완결됐다. 해서 부제는 ‘사천의 바람-대나무-섬으로부터’다. “이 통로의 왼쪽엔 남해 풍경이, 오른쪽엔 제 작품 ‘풍경의 알고리듬’이 있습니다. 현대식 건물 속에서 이 작품, 이 공간이 ‘매혹의 블랙홀’이 되길 바랍니다.”

사천(경남)=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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