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램프 〈X〉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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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해 보이는 한 남학생 앞으로 무작정 달려드는 검은 양복의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물리치는 남학생. 그리고 또 '능력자'라 불리우는 범상한 인물들. 그가 도쿄로 오고부터 주변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카무이다.

또다시 평범해 보이는 고등학생 남매 후마와 고도리. 그들은 카무이와 옛 친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6년만에 도쿄로 돌아온 카무이는 그들을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다. 카무이는 "나는 6년전의 내가 아니야"라고 말할 뿐이다.

운명은 결정되어있고 미래는 바꿀 수 없다

'카무이가 큰 구슬을 손에 들고 있다. 들고 있던 구슬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점점 더 커지는 구슬, 아니 그것은 구슬이 아니다. 지구다. 카무이가 지구를 떨어뜨려 지구는 깨진다. 여기저기 흩어진 지구의 파편. 파괴되어 버린 세상. 그리고 도쿄타워와 도청만이 남아있고 카무이의 어깨에는 천사와 악마의 날개가 하나씩 달려있다'
여고생 고도리의 꿈에 비친 카무이의 모습과 지구의 미래. 이렇듯 지구의 운명은 바로 카무이 손에 달려 있는 것일까?

1999년 약속의 날. 그날은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다. 그것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7인의 사자. 그들의 목적은 7개의 봉인을 없애고 지구의 결계를 깨뜨리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지구를 더럽힌 자들을 모두 없애고, 다시 처음의 깨끗한 지구로 돌아가려 한다. 그들은 '지구가 죽어간다'고 말하고 이것이야 말로 지구를 지키는 길이라 한다. 이들의 운명은 바로 지구를 구하는 것이다.

7개의 봉인. 이들 역시 7인의 사자와 같은 '능력자'다. 이들은 7인의 사자들이 결개를 깨지 못하도록하여 지구를 파괴를 막는 것이다. 그들은 현재의 세계를 지킬 의무가 있고 그것을 위해 태어났다. 이들의 운명 역시 지구를 구하는 것이다.

이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지구의 미래는 바꿀 수 없다. 다만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거라고는 미래가 두가지 라는 것. 어느쪽으로 나아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카무이의 선택에 달렸을 뿐이다.

어느것이 진정으로 지구를 구하는 것인가

7인의 사자와 7개의 봉인. 그리고 지구의 결계가 깨지면 7인의 사자가 7마리의 지룡(地龍)을 깨워 지진을 일으킨다. 이 지진이 바로 지구를 멸망하게 만든다. 그리고 지룡의 깨우지 못하도록 막는 천룡(天龍). 이들은 7개의 별(북두칠성)이며 지구를 구할 결계를 창조한다. 이 결계를 지키고 또 지구를 구할 결계를 창조하는 것이 바로 7개 봉인이 할일이다.

세상의 처음과 끝을 의미하는 숫자 7(혹은 일곱). 하나님이 천지창조에 걸린 시일 일주일. 그리고 요한게시록에 수도 없이 나오는 일곱교회와 일곱별, 일곱 봉인과 일곱 천사. 작품 〈X〉는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클램프 작품들 특유의 '성경'을 모티브로 한 세계관이 보인다.

주인공 카무이. 그는 '사자'가 될것인지 '봉인'이 될것인지를 선택 해야만 한다.
어느것이 더 지구를 구하는 길일까. 이대로 가다간 지구는 죽어버릴 것이 분명하고, 살린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모든 생물들은? 지구가 그들을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지구의 주인이 지구 그 자체가 아닌 바에야 세상을 멸망시켜 지구를 구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질 않나.

독자들이 이렇게 수도 없이 고민을 하는 사이, 카무이는 단순하게 결정을 내려버린다. "나에게 지구의 운명따윈 필요없다. 다만 사랑하는 후마와 고도리가 행복하기 만을 바랄 뿐이다." 슬그머니 결정이 나 버린다. 어찌되었건 카무이는 세상이 유지되기를, 7개의 봉인이 되기를 결심한 것이다.

그러면 이젠 세상이 구원되었다고 느끼는 사이, 꿈에 보이던 카무이의 두 날개의 의미가 펼쳐진다. 카무이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던 것이다. 바로 카무이의 쌍둥이 별(그림자 별) 후마다.
결정은 간단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카무이가 어떤 결정을 하건 후마는 다른편에 서게 되어 있었다. 카무이는 그저 후마와 고도리를 위해 봉인이 되기를 결정한 것 뿐인데, 그의 결정으로 인해 고도리는 죽고 후마는 가장 큰 적이 되었다. 어떤 방법으로건 이들은 그들의 운명을 바꾸지 못한 것이다. 아마 카무이의 선택이 반대였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운명은 결정지어진 대로 흘러가는 것이니 말이다.

이 세상의 중심은 도쿄다

다소 난해한 작품 〈X〉. 그러나 작가는 두가지 운명에 공평하지 않아 보인다.
7개의 봉인이 되어갈수록 따뜻함을 보이는 카무이. 그는 지구의 파괴를 막아야만 하는 이유를 고도리 이외의 다른 인물에서 점점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7인의 사자가 된 후마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채 사악해져만 간다(자기를 잃어버리고 급기야 여동생 고도리를 죽여버린다). 클램프는 시종일관 밝음과 어둠, 흰색과 검은색으로 표현해 자꾸만 독자를 천룡쪽으로 끌어간다.

주인공 이름 카무이(神威). 그 이름에 부여된 두가지 의미. 하나는 '신의 위업을 계승하는 자', 다른하나는 '신의 위업에 도전하는 자'. 클램프는 천룡을 '신의 위업을 계승하는 자'로 결정한다. 신의 위업이라는게 어떤것인지도, 어떤 것이 진짜 지구를 구하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사건이 벌어지는 도시 도쿄. 여기에서 말하는 도쿄는 단순한 일본의 수도 도쿄가 아니다. 도쿄는 바로 이세상 지구를 의미하는 것으로 도쿄가 파괴된다는 것은 지구가 멸망한다는 것이다.
지구에 쳐져있는 수많은 결계. 이 결계의 핵은 바로 도쿄이며, 황궁을 중심으로 도쿄를 지키게끔 만들어진 결계의 선이 지하철 노선 이라고 클램프는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 일어나는 지진은 7인의 사자와 7개 봉인의 지구를 지키기위한 끝임없는 싸움인 것이다.

피할 수 없이 결정된 두가지 미래. 하지만 미래는 처음부터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그저 하나의 미래를 향해 각자 자기가 짊어져야 할 운명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일지도. 이렇듯 그들의 운명은 하나뿐인 미래를 향해 피할 수 없는 결전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 카무이의 결정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일까?
하나의 미래를 향해 돌진하는 둘. 어쨌든 승리하는 자는 진정한 카무이(神威)가 될 것이고 그는 '신의 위업을 계승하는 자'가 되어 지구의 구원을 이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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