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용적률 완화의 순기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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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근 청계천 주변 재개발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계기로 도시계획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건물의 높이나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건축 연면적의 비율)을 완화해 주는 것은 '특혜'이며, 따라서 이를 결정하는 도시계획은 비리의 온상일 것이라는 예단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부정적 인식이 고착되면 앞으로 건물의 높이나 용적률을 완화해 주는 모든 도시계획 결정은 '특혜'로 비춰져 이뤄질 수 없을 것이므로, 우리나라 도시의 모습은 그만큼 획일적으로 변해 버릴 수밖에 없는 위험성이 있다.

도시계획 차원에서 건물의 높이를 규제하는 이유는 도시경관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경관이란 주관적 요소가 많아 개인마다 평가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건물높이는 절대기준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특히 높이 규제를 강화해 낮은 키에 뚱뚱한 몸집의 판상형 건물을 만드는 것과, 높이 규제를 완화해 높은 키에 홀쭉한 몸집의 탑상형 건물을 만드는 것 중 어느 것이 도시경관에 보다 잘 어울리는지는 일률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때문에 지역여건에 따라 도시계획이나 건축 전문가들의 판단을 빌려 높이 규제를 강화하거나 완화하고 있다. 건물의 높이 완화 자체를 '특혜'로 보게 되면 건물높이와 도시경관에 대한 전문가의 판단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획일적으로 높이가 낮고 옆으로 퍼진 판상형 건물만을 양산하게 된다.

용적률을 통해 건물의 규모를 규제하는 이유는 도로.공원 등과 같은 도시 기반시설에 과부하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기반시설이 부족하면 용적률 규제가 강화되고, 양호하면 완화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특히 자기 토지의 일부를 도로.공원 등으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용적률을 완화해 주는 인센티브를 준다. 도시계획 차원에서 용적률은 조건 없이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기반시설 제공이라는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용적률 완화와 기반시설 제공을 함께 연계하여 보지 않고 용적률 완화만을 따로 떼어 '특혜'로 간주하게 되면, 오히려 기반시설이 부족한 곳에서 용적률 인센티브를 통해 도로.공원 등을 확충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는 결과가 된다.

도심 재개발구역에 대해 건물의 높이나 용적률을 완화해 주는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다. 개별 토지에 각자 건물을 세우면 도시경관의 조화를 이루기가 어렵고, 도로를 신설.확장하거나 공원을 설치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일정 구역을 정해 함께 재개발하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도시계획에 따라 도심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곳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서울의 사대문 안 도심은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강남 개발의 성공을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남 등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사대문 안만 용적률과 높이 규제가 차별되어 강화되었고, 학교 이전은 물론 학원도 들어올 수 없도록 규제가 가해졌다. 그 결과 오늘날 강남은 높은 빌딩 숲을 이루고 좋은 교육환경을 갖게 되었지만, 강북의 활동중심이 되어야 할 사대문 안 도심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강북 도심에 대해 용적률과 높이 규제를 완화해야 할 필요성이 도시계획 전문가 사이에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고, 청계천 복원은 이를 현실화하는 촉매로 작용했다. 전문가에 따라 청계천 주변의 적정 용적률이나 높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도시계획 차원의 판단을 근거로 하고 있다. 단지 건물의 용적률이나 높이가 완화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도시계획의 특혜나 부패의 정황적 증거로 확대해석해 도매금으로 매도한다면, 장래 우리 도시의 모습은 지금보다 결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최막중 서울대 교수.도시계획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