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사립학교법 개정 이를수록 좋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열린우리당은 교직원 임면권을 재단에 주는 대신 재단 이사회 구성원의 3분의 1 이상을 교사.학부모.학생 등이 추천하는 외부인으로 하는 개방형 이사제도를 골자로 한 사립학교법 수정안을 마련,지난해부터 국회 통과를 시도했지만 지금까지 이런저런 불투명한 이유로 미루어지고 있다. 이런 까닭에 참여정부 역시 역대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사학 관련 국회의원들과 사학 단체들의 집요한 로비와 저항에 휘둘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과거사법처럼 또 다른 개악된 사립학교법을 만들어 통과시키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사립학교가 비리의 온상이라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교육의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립학교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국 우리나라 전체 교육이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건전한 사학까지 싸잡아 비리의 온상인 양 매도해서는 안 된다.

이제 사립학교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학 관련 단체들은 "극소수에 불과한 사학의 문제를 구실로 사학의 운영권을 탈취하려는 저의가 있다"며 사립학교법 개정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특히 이번의 절충안도 사학 운영권 침해라며 "법률적 대응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개정안 통과를 저지하는 한편 최악의 경우 학교를 폐쇄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고 으름장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건전한 사학의 경우, 법이 어떻게 고쳐지든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에 여느 집단과 마찬가지로 집단 이기주의를 앞세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지난날의 사립학교법은 사립학교의 공공성은 최소화하는 대신 설립자나 법인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해주고 있는데 사학 재단들은 이를 철저히 악용해 왔다. 대부분의 사립학교가 재단 이사장의 아들.딸.며느리.사위 등 친인척이 장악한 족벌 체제로 운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를 비영리 육영사업이 아닌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사업쯤으로 인식하는 구태의연한 행태 또한 여전하다.

특히 학교 운영경비의 거의 전부를 학생의 등록금과 정부보조금에 의존하면서 재단의 부담금인 전입금은 5% 미만에 그쳐 투자는 외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학교장과 교원 임면권, 학교 인사위원회.예결위원회 위원의 비민주적 선출 및 형식적 운영, 학교 예산 편성과 운영 등 거의 대부분의 권한을 독점하고 각종 비리를 양산하면서 학교를 개인 왕국으로 황폐화시켜 왔음을 부인키 어렵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지난 역대 정권들은 '사학의 자율성'만을 강조하면서 사립학교 개혁을 애써 외면해 왔거나 적당히 영합해 왔다. 이들 사학 재단은 우리나라 교육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명분 아래 공교육의 국고 보조와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필요할 때는 공공성을 내세우다가도 사학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면 개인 재산이므로 간섭하지 말라고 반발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21세기 교육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교육 당국은 물론 사학 관계자 모두 제로 베이스(zero base) 사고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난날 관행.관습을 모두 버리고 완전히 제로 상태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금 학교 현장은 총체적 위기 속에 있다. 따라서 사립학교법 개정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특히 교육 전반에 대한 사학의 독점 족벌체제를 막아내고 교육 주체의 권한을 확보해 사립학교의 진정한 자율성과 공공성.투명성을 확보하는 차원으로 사립학교법은 개정되어야 마땅하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살고 교육의 성공 여부에 21세기 우리나라 운명이 달려있다.

이윤배 조선대 교수·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