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왕룽의 대지〉 봉필역 장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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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연기자를 스타덤에 올려주는 캐릭터 중에 '터프 가이'가 있다. 터프 가이 스타가 되려면 거칠고 강렬하면서 은근히 순진함이 우러나는 인상이어야 한다.

터프 가이의 표밭인 여성 팬들에게 가슴 설레임과 안쓰러운 마음을 동시에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최재성. 이정재. 정우성이 그랬다. 이제 장혁(23)이 그 터프가이 스타의 계보를 잇겠다고 나섰다.

어촌출신으로 바닷바람에 단련된 피부, 고교시절 마라톤과 기계체조로 다듬은 몸매, 강렬한 눈빛 등 터프 가이 스타의 3대 요소를 갖췄고 그위에 부드러운 미소로 마감재를 얹었다. 요즘 소녀들 사이에서 차태현과 더불어 가장 인기있는 남자 연기자로 뜬 것도 이해가 된다.

어딘지 비슷한 외모와 분위기 때문에 '제2의 정우성' 소리를 들어온 그는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쉽게 기억될 수 있지 않느냐."고 대범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그냥 '장혁'으로 기억되고 싶은 것은 연기자로서 인지상정. 최근 출연중인 SBS 인기 드라마 〈왕룽의 대지〉(토·일 밤8시50분)는 그런 희망을 실현해 줄 기회일지 모른다. 이 드라마에서 그가 맡은 봉필 역은 촌스런 꽃무늬 티셔츠 차림에 어색한 영어발음 '피-일(Feel)'을 연발하는 건달이다.

비뚤게 자라 폭력조직에 휩쓸리는 아웃사이더 역이었던 〈햇빛 속으로〉에서와는 퍽 대조적인 돈키호테형 캐릭터다. 애수어린 눈빛과 절제된 행동 대신 코믹한 표현을 해야한다. 장혁이란 연기자가 다양한 이미지를 표출할 수 있음을 보여줄 지표같은 역이다.

게다가 봉필은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무게를 더해가는 중역(重役)이다. 왕룽(박인환)의 후계자로 찬새미 마을의 땅을 이어받아 혁신적 농법으로 가계를 불리게 되며, 한 여자 화정(박시은)만을 열렬히 사모하는 순애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런 봉필에 대한 장혁의 애착은 깊을 수 밖에 없다. "자기만의 소신을 갖고 있는 인물이란 점에서 무척 맘에 들어요. 저도 어리긴 하지만 소신파거든요."

사실 장혁은 겹치기 출연 사절, 가수로의 외도 거부 등으로 '소신'을 보여준 바 있다. 3월 촬영에 들어가는 영화 〈화산고〉(김태균 감독) 출연을 위해 K2TV 미니시리즈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캐스팅 섭외를 고사했고, 인기 탤런트들에게 흔한 유혹인 음반 제작 제의도 거절한 것. 그 소신이 연기의 질을 높이는데 바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게 팬들의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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