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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연, 연구 안 한 퇴직 간부에게 웬 연구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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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양원보
사회부문 기자

“이렇게 나간 돈 다 털어내 봐라. ‘반값 등록금’이 문제겠나. 대학 공짜로 다닐 수 있다.”(네이트 ID:조민수)

 “대학교 시간강사들은 돈 몇 푼 벌어 보겠다고 미친 듯이 논문 써대는데 저 사람들은 뭡니까.”(네이트 ID:주승민)

 분노의 울림이 크다. 서울시 출연 연구기관인 시정개발연구원(시정연)이 퇴직한 시 고위 간부들을 초빙 선임연구위원으로 데려와 많게는 5500만원의 연구비를 지급하고도 연구과제물 한 건도 받지 않았다는 본지 기사(6월 9일자 22면)가 걸린 인터넷 포털사이트엔 수백 건의 댓글이 올라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노동 유임금’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들은 없다. 시정연은 연구원 내규가 그렇게 돼 있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임용규칙 15조 2항은 ‘정원 외 직원 중 초빙 연구원은 연구과제 등에 대한 연구지도, 기타 시정 전반에 대한 시책개발·건의 등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초빙 연구위원으로 영입된 시 간부들이 논 게 아니라 ‘연구지도’ 및 ‘시책 개발과 건의’를 하면서 밥값을 했다는 주장이다.

 연구비를 지출했으면 ‘흔적’을 남겨 놓는 건 공금 쓰는 사람들의 의무다. 시정연이 초빙 선임연구위원들에게 준 돈은 서울시민이 낸 세금이라 더욱 근거가 필요하다. 시정연에 초빙 선임연구위원들이 어떤 연구지도와 건의 등을 했는지 물었다. 답변은 “문서화된 자료는 없다”는 것이다. “설령 어떤 연구과제를 위해 자문을 하고, 건의를 했어도 연구위원 이름을 보고서에 기록하는 것도 아니고…”라고도 했다. 전직 간부들이 뭘 했는지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셈이다.

 이런 ‘내규’, 잘못된 거다. 시정 경험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이 경험이 정책을 개발하는 데 쓰였다는 증거가 없다. 퇴직한 시 고위 간부에게 자리 만들어 주고 연구성과가 없는데도 수천만원을 퍼주는 이런 내규에 분노하지 않을 시민은 없다. 올해 시정연 예산 194억원. 모두 시민 세금이다. 서울시 발전을 위해 연구하라고 떼어 준 세금을 퇴직 간부들의 ‘실업급여’ 주는 데 쓰는 걸 중단해야 한다.

양원보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