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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공연해 모은 돈으로 어린이 돕는 그들, 착한 ‘나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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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청계천 오간수교 수변무대에서 ‘노래촌’의 자선 거리공연이 열렸다. 노래촌은 공연 모금액을 아동보호시설 ‘시온원’아이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어디에 있나요. 제 얘기 정말 들리시나요….”

가수 임재범의 노래 ‘고해’가 울려 퍼진다. 지난달 29일 저녁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부근 오간수교 수변무대. 열창하고 있는 이는 자선 거리공연단체 ‘노래촌’ 촌장 최현민(30·자영업)씨다. 노래가 끝나자 지켜보던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외친다. “앵콜-” “잘한다” 날씨가 화창해 가족·연인끼리 나들이 온 사람이 많았다. 최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사실 살짝 삑사리가 났어요”라고 말하자 관객들이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공연이 열리는 날이면 노래촌 맴버들은 폭이 5m 남짓한 수변무대 양 끝에 대형 스피커를 설치한다. 뒤쪽 난간에는 ‘노래촌과 함께하는 음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들기’라고 쓰여진 현수막도 건다. 100여명의 시민들은 무대 옆 계단에 앉거나 물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계단에 자리를 잡는다. 바닥에 앉아 발을 물에 담그고 감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나가던 길에 한 두 곡 듣고 자리를 뜨거나 난간에서 잠깐 내려다 보는 사람, “이제 그만 가자”고 보채는 아이와 “한 곡만 더 듣자”는 엄마의 실랑이도 있다.

‘나가수(나는 가수다)’나 ‘슈스케’(슈퍼스타K) 같은 TV의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가요 열풍이 거센 요즘. 가수 뺨 치는 노래 실력으로 어려운 이들을 돕는 ‘착한 가수’들이 있다. 에어로빅 강사·의류회사 직원·물리치료사 등의 직업을 가진 평범한 이웃이기도 하다. 자선 거리공연단체 ‘노래촌’과 실천하는 노래모임 ‘그루터기’ 맴버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노래촌’은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던 전상현(45)씨가 1992년에 만든 직장인 노래모임이다. 2008년 전씨의 개인사정으로 활동이 중단 되기 전까지 10여명이 대학로나 명동에서 거리 공연을 했다. 공연 모금액으로 경기도 의정부 지역 소년소녀 가장 12명을 지원했다. 2009년 2월부터는 최현민씨가 촌장을 맡아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인사동·신촌 일대에서 공연을 하며 모은 돈으로 지난해까지 근무 중 상해를 입은 경찰관과 소방관의 치료비를 후원했다. 청계천에서 주말 콘서트를 연 것은 지난해 11월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3~7시에 6명이 50여곡을 교대로 부른다. 이날은 ‘김흥자 한국무용단’의 판소리 공연과 시간이 겹쳐 오후 5시부터 4시간 동안 공연을 했다.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혹한 때나 비 오는 날 말고는 공연이 계속된다. 지난 3월부터는 서울 동작구에 있는 아동보호시설 시온원 아이들의 학용품과 생필품을 지원하고 있다. 건설회사를 다니고 있는 장혜인(25)씨는 노래촌 ‘나누미’ 팀장이다. 장씨는 “나누미는 노래에 소질 없는 노래촌 회원들 10명이 꾸린 봉사팀이에요. 매달 첫째 주 일요일에 직접 장을 봐서 시온원에 있는 서른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줘요”라고 소개했다. 무대 맞은 편 계단에 앉아 노래를 듣던 권수진(39·여·공무원)씨가 쪼르르 다가와 모금함에 돈을 넣는다. 커튼을 사러 평화시장에 왔다가 노랫소리에 끌려 무대를 찾았다고 했다. “원래 공연을 볼 땐 돈을 내잖아요. 좋은 노래 들려주고 취지까지 좋은데 동참해야죠.” 이날 모금된 금액은 70여명으로부터 20여만원.

그루터기는 2001년 9월 결성됐다. 2002년 4월 인사동 첫 거리공연을 시작으로 어린이 신장병 환자를 돕기 위해 공연을 한지 10년이 됐다. “어느 의료사회복지사로부터 신장병 환자들에 대한 지원이 열악하다는 말을 듣고 회원들과 신장병 어린이를 돕기로 했지요. 그 아이들에게는 ‘희망동이’라는 별칭을 붙였어요. 공연 때 모은 돈과 홈페이지 회원들의 후원으로 2002년부터 지금까지 열한명의 희망동이에게 7000여만원의 치료비를 지원했지요. 지금은 일곱 명에게 매달 10여만원씩 지원하고 있고요.” 한의사인 회장 김태성(41)씨의 말이다. 2004년 10월부터는 그루터기 공연이 인천 월미도에 있는 문화의 거리 야외공연장으로 옮겨졌다. 매달 첫째 주 혹은 둘째 주 일요일 오후에 회원 20명이 거리공연을 한다. 회장 김씨는 평일에는 한의사지만 주말에는 그루터기 가수가 된다. 현충일 휴일인 6일에는 87회 공연이 있었다. 노래촌 홈페이지(norechon.co.kr)와 그루터기 홈페이지(grutergi.net)에서 공연 봉사 신청과 후원이 가능하다.

글=윤새별 행복동행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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