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가 고영하씨 “한국의 저커버그 발굴해 키우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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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인터넷 방송 스튜디오. 젊은 벤처기업가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여 강연을 듣고 정보를 나누는 ‘고벤처(go venture) 포럼’이 열렸다. 이날 강연자는 IBM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 디자인 1인 기업을 창업한 강성찬(29)씨였다. 강씨는 미래학자 대니얼 핑크(Daniel Pink)의 말을 인용하며 “계획 세우지 마라. 항상 새로운 걸 배우고, 멋지게 실패하고, 실패로부터 배워라”라고 역설했다. 대학 신입생부터 70대 아이폰 앱 개발자까지 70여 명이 강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스튜디오 뒤편에서 이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50대 남성이 있었다. 4년 전 포럼을 창립한 고영하(59·사진) 회장이었다.

 “10대 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150만 개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2000만 개는 벤처나 중소기업에서 나와요. 저는 젊은 ‘P세대’들의 아이디어와 기성 세대의 노하우를 연결해주는 멘토가 되고 싶습니다.”

 고 회장은 벤처기업가들을 “이 시대의 영웅”이라고 불렀다. 사실 고 회장은 벤처와는 전혀 상관없는 민주화 투사였다. 연세대 의대를 다니던 그는 1970년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체포돼 옥살이를 했다. 민청학련 사건에도 연루됐다. 88년 3당 합당에 반대하며 창설된 한겨레민주당의 창당 멤버이기도 했다.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함께 활동했다. 노 전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 유인태 전 의원 등과 함께 외곽에서 지지자를 모았고 당선 후에는 청와대 인사위원을 맡았다. 그러나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를 헐뜯어야 하는 ‘미움의 정치’가 싫어 10여 년 전 정치판을 떠났다.

 이후 고 회장은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젊은 창업가들에게 투자자를 연결해주고, 사업을 하며 부딪치는 금융·법률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해줬다. 자신이 직접 IPTV 관련 기업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다 좀 더 많은 젊은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2007년 고벤처 포럼을 만들었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마다 P세대 창업가들이 이곳에 모여 동업자를 구하고 정보를 나누고 인맥을 쌓았다. 포럼이 입소문을 타면서 10여 명이었던 회원이 300여 명으로 늘었다. 지난해부턴 투자자 모임을 만들어 직접 투자도 시작했다. 온라인 소개팅 사이트인 ‘이음넷’과 소셜커머스 업체인 ‘씽크리얼즈’가 고벤처의 작품이다.

 그는 투자할 때 아이템보다 사람을 본다. 아무리 좋은 사업계획서를 들고 와도 바로 투자를 결정하지 않는다. 몇 달간 함께 어울리고 포럼에서 토론도 하며 리더십과 자질을 판단한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아무런 보증 없이 투자한다. 그는 “사업도, 기술 개발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 회장은 “죽을 때까지 젊은 친구들과 놀며 살고 싶다”고 했다. “지금 10년 넘게 네이버나 엔씨소프트 같은 회사들이 나오지 않고 있어요. 고벤처 포럼이 한국의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들이 자라는 장이 됐으면 합니다.”

이한길 기자

글로벌‘P세대’의 특징
Pioneer(개척자) 새로운 길을 열어나간다
Patriotism(애국심) 애국심에 눈뜨다
Pleasant(유쾌) 현빈 세대, 군대도 즐겁게
Power n Peace(평화) 힘 있어야 평화 지켜
Pragmatism(실용) 진보·보수 이분법 거부
Personality(개성) SNS로 자기 생각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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