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100> 100번의 현문, 100번의 우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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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8년 전이었습니다. 야구 문외한이던 ‘현문우답’은 그때 야구 담당기자였습니다. 서울 잠실야구장 포수석 뒤의 기자석에 앉아 있었죠. 당시 야구전문기자이던 선배가 와서 옆에 앉았습니다. 투수가 공을 던졌습니다. ‘퍽!’하고 꽂혔습니다. “잘 봐. 방금 저 공은 슬라이더야.” 투수가 다시 공을 던졌습니다. “저 공은 커브야” “저 공은 직구야.” 자상하게 설명을 했죠. 도통 모르겠더군요. 슬라이더가 커브 같고, 커브가 직구 같고, 직구는 슬라이더 같더군요. ‘현문우답’은 그렇게 야구와 안면을 텄습니다.

 그때 직구와 커브, 슬라이더를 일러줬던 선배는 이태일(현 프로야구단 엔씨소프트 대표)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였습니다. 당시 ‘인사이드 피치(Inside Pitch)’라는 야구칼럼을 연재하고 있었죠. 커브와 슬라이더도 구분 못 하던 저는 ‘인사이드 피치’를 통해 야구를 배웠습니다. 칼럼은 ‘야구’를 이야기했고, 저는 늘 ‘야구 너머’를 배웠습니다. 왜냐고요? 그의 칼럼에는 야구 기자의 영혼이 흘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영혼이 담긴 칼럼, 그 울림은 정말 크구나. 언젠가 저런 글을 쓰고 싶다.’

 웬 야구 타령이냐고요? ‘현문우답’이 100회째를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문사 자료실로 갔습니다. 옛 신문을 훑었습니다. 2000~2006년 262회 연재됐던 야구 칼럼을 말입니다. ‘현문우답’이 보고 싶은 건 오직 하나였습니다. 영혼이 깃든 야구 칼럼을 썼던 선배 기자의 ‘초심(初心)’이었습니다. 그의 첫 칼럼, 100회째 칼럼, 200회째 칼럼은 어땠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 속에 흐르는 ‘야구 기자의 초심’을 말입니다. 왜냐고요? 그걸 통해 ‘현문우답의 초심, 종교기자의 초심’을 짚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초심을 잃을 때 우리의 영혼도 무너지죠. 영혼이 무너질 때 우리는 초심을 잃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는 수시로 초심을 잃었습니다. 중세의 종교개혁도 실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이었습니다. ‘현문우답’도 그렇습니다. 칼럼 연재를 시작하며 먹었던 마음이 지금도 살아 있는가. 그걸 자문하고 싶었습니다.

 옛 신문을 훑었더니 소득이 있었느냐고요? 물론입니다. ‘인사이드 피치’는 ‘삐끗하지 않은 몸쪽 공’이란 뜻입니다. 칼럼 제목에 이미 답이 있더군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타석에 들어서 본 사람은 실제로 느껴본 적이 있으리라. 투수의 몸쪽 공은 두렵다. 빠른 몸쪽 공이 얼굴을 겨냥한 듯 몸쪽으로 날아들 때, 그 공에 ‘슈~욱’하는 쇳소리가 함께 실려 있을 때, 나는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얼어붙은 적이 있다. 그렇게 두렵고도 삐끗하지 않은 공. 그런 정직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현문우답’은 지금껏 100개의 현문, 100개의 우답을 던졌습니다. ‘현문우답’의 스트라이크 존은 명확합니다. 일상의 무릎부터 깨달음의 어깨까지, 우리가 틀어쥐고 있는 착각의 덩어리입니다. 그곳을 향해 ‘현문우답’의 공은 날아갑니다. 생각해 봅니다. 타석에 들어선 독자분들은 어땠을까. 때로는 방망이가 나가고, 때로는 어이없는 공을 바라만 봤을 겁니다. 파울성 타구도 있었을 거고, 담장을 훌쩍 넘기는 홈런도 나왔을 겁니다. 독자의 선구안(選球眼)과 타율에 따라 공의 구질도 다르게 느껴졌을 겁니다.

 ‘현문우답’에겐 늘 숙제입니다. 공에 실리는 스피드와 회전력이 말입니다. 어떤 이는 “공이 너무 빠르다”고 하고, 어떤 이는 “너무 느리다”고 말합니다. 그때마다 ‘현문우답’은 자신에게 묻습니다. “직구와 커브, 그리고 슬라이더를 적재적소에 꽂고 있는가. 일상의 행복, 일상의 자유를 막고 있는 착각의 덩어리를 향해 공이 날아가고 있는가. ‘현문우답’ 스스로 그런 착각의 덩어리를 깨면서 공을 던지고 있는가.”

 돌아보니 종교 칼럼의 화두와 야구 칼럼의 화두가 통하더군요. 몸쪽을 파고드는 공, 바람을 가르는 두려운 공, 착각의 덩어리를 깨는 공, 그래서 따뜻한 공. 그러면서도 정직한 공. ‘퍽! 퍽! 퍽!’ 이 모든 화두를 자신을 향해 던지며 ‘현문우답’ 100회는 다시 첫 회로 돌아갑니다. 초심은 출발점이자 종점이니까요.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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