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경제 르포] 독일 보쉬사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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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독일 남부 포이어바흐의 보쉬 공장에서 직원들이 디젤엔진용 고압펌프를 최종 생산 단계에서 검사하고 있다.


독일의 남부 도시 슈투트가르트는 자동차 도시다.

 벤츠·포르셰의 본사와 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BMW·아우디도 차로 1시간여 거리인 뮌헨·아우스부르크에 위치한다.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 회사인 보쉬 역시 100년 전 이곳에 엔진용 부품공장을 세웠다. 완성차 업체와 부품 회사 사이에 신속하고 안정적인 협력관계가 필요한 자동차 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특히 슈투트가르트 외곽에 있는 보쉬의 포이어바흐 공장은 디젤엔진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한 곳으로 유명하다. 엔진 실린더에 연료를 공급하는 핵심 기술인 전자식 커먼레일 시스템을 1997년 세계 최초로 양산한 곳이다. 벤츠·BMW·아우디·폴크스바겐을 비롯해 현대·기아차도 이 기술을 사용한다. 올해로 창립 125주년을 맞아 보쉬는 한국 기자에게 첨단 디젤 시스템 생산시설을 공개했다. 이 회사의 디젤 시스템 부문 클라우스 볼러 부사장은 “전 세계 40여 개 보쉬 부품공장 중 머리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보쉬에서 생산하는 디젤엔진용 고압펌프 CP4. 연료를 고압으로 실린더에 쏴주기 때문에 디젤엔진의 심장으로 불린다.

 공장의 첫인상은 대학 캠퍼스 같았다. 축구장 28개 크기(약 16만6000㎡)의 부지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게 자랐고, 건물 사이사이 푸른 잔디밭이 넓게 펼쳐졌다. 그러나 커먼레일 시스템에 들어가는 최신형 고압펌프(CP4) 생산 빌딩에 들어서자마자 딴 세상이었다. 정전기를 막고, 미세먼지를 제거한 특수 작업복을 입어야 작업실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한스-피터 식스트 디렉터는 “각 부품을 1㎛(마이크로미터·0.001㎜) 단위로 정밀하게 가공하기 때문”이라며 “엄격한 생산관리를 통해 최근 수년간 불량률이 8ppm(제품 100만 개 중 불량품이 8개)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만드는 CP4는 유럽연합(EU)의 배기가스 허용기준인 유로5에 맞추기 위해 개발된 4세대 고압 펌프다. BMW 7시리즈의 엔진과 현대·기아차의 R엔진에도 들어간다. 연료를 1800~2000바(bar) 압력으로 실린더에 쏴주는 역할을 한다. 디젤엔진의 심장이다. 2000바 압력이란 새끼손가락 굵기의 원통에 2000㎏의 무게를 올려놓는 힘의 크기다. 전종규 보쉬 코리아 부장은 “공기와 혼합한 연료를 더 높은 압력으로 쏘아줄수록 연료입자가 최대한 작은 알갱이로 쪼개진다”며 “배기가스가 줄고 연료 효율이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유럽에선 디젤차가 대세다. 시장 점유율이 51%를 넘는다. 유럽연합(EU)의 조사결과 요즘 디젤차는 같은 급의 휘발유차와 비교해 연비는 30% 좋고,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미세먼지 발생량은 20% 줄었다. 르네 렌더 보쉬 부사장은 “차값은 디젤차가 10~20% 비싸지만 연비가 뛰어나다”며 “유럽에선 유해물질 배출량에 따라 자동차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친환경 디젤차의 인기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디젤차 점유율은 19%다. 하지만 최근 기름값이 뛰면서 수입차 시장부터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경차보다 연비가 앞선 폴크스바겐 골프TDI, BMW 520d 같은 디젤 승용차가 올해에만 1만5000여 대 팔렸다. 지난해와 비교해 30% 이상 늘었다. 유럽과 달리 한국은 디젤차에 보조금이 없는데도 이처럼 판매가 증가한 것이다.

 렌더 부사장은 “EU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한국과 EU 시장 모두 친환경 디젤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이 전개될 것”이라며 “보쉬도 한국 내 시설투자 확대를 조만간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슈투트가르트=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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