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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남북 밀사, 실무자 몫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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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경수
명지대 교수·국제정치학

남북 정상회담을 놓고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비밀접촉의 전말이 공개된 이후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딜레마가 깊어지고 있다. 북한은 연일 군사보복을 거론하면서 대남 위협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대북 식량지원 문제로 북한을 방문했던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는 “한국 정부와 많은 이슈에 대해 동의하지만 일부 문제에선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북 식량문제에 대해 한·미 간에 갈등이 생길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중국이 국방부장 발언을 통해 “섣불리 모험하지 말라”고 북한에 견제구를 날리기는 했지만, 북한 편중의 외교노선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사태가 이렇게 꼬이게 된 것은 물론 북한의 막무가내식 폭거가 일차적 요인이다. 그러나 이를 일방적으로 탓하기에는 우리 측에도 반성의 여지가 적지 않다고 본다. 내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을 초대한다는 중차대한 메시지를 발표하기에 앞서 북측과 사전교감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1차적인 실책이다. 이보다 더 큰 실책은 베이징 비밀접촉에 청와대·통일부·국정원의 실무 책임자들이 참여해 마치 동맹국 간에나 있음직한 ‘2+2’ 형식의 담판을 벌인 것이다. 이는 ‘비밀’의 형식 요건을 저버린 처사로,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사실상 준전시 상황이나 다름없는 현 남북관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972년 5월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극비 방북 이래 여러 차례 벌여 온 대북 특사·밀사외교에서 얻은 교훈은 당시 정권의 최고실세가 상대 카운터파트와의 직접적인 딜을 통해 담판을 벌이는 ‘창구단일화’와 ‘최고위층 간의 접촉’이라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남북 양측 모두 내정(內政)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중대한 사안을 논하는 자리에 실무자급이 만나 담판을 시도했다는 자체가 이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일부 예비군 훈련장에서 북측이 그렇게도 신성시하는 김정일 일가의 사진을 사격 표적지로 사용한 것도 오버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번 사태는 ‘비정상적인 집단’인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 군을 포함한 우리 외교안보라인의 단견을 드러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향후 한반도의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돼 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12년 말까지의 대내외 상황변수가 관건이다. 북한의 김정일 부자 세습체제의 불안정성과 강성대국의 해에 따른 과욕, 남한과 미국의 대통령선거 등은 북의 도발 가능성을 더욱 높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남북 관리의 안정적 관리’에 국정의 우선순위를 두되 북의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한다는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의 전쟁지도부인 국방위와 인민군 총참모부가 ‘이○○ 역적패당과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막말을 써가며 남북관계를 총체적 파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현 외교안보라인은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획기적인 남북관계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새로운 대북관리 패러다임을 선보일 필요가 있다.

김경수 명지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