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칼럼] 여성은 폐경 후 심혈관 질환 위험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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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 심장, 건강한 삶

김진구 내과
김진구 원장

폐경 즈음인 50대 초반 여성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등산 시에 발생하는 호흡 불편감, 견갑부 불편감, 안면 홍조 등의 증상으로 산부인과와 신경 정신과를 거쳐 내원하였다. 이 환자는 폐경기 증상에 의한 것이라 여겨 산부인과에서 호르몬 대체 요법을 시행 받았으나,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다시 신경 정신과에서 스트레스 관련 질환에 대한 치료를 하였으나, 역시 증상 호전이 없었다고 한다.

이 환자는 수년전부터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의 소견을 보이는 대사증후군 진단을 받고 약물 치료를 권유 받았으나, 운동 및 식이 요법으로 조절하는 것이 좋다는 주위의 말에 따라, 나름대로 운동으로 조절하고자 노력 중이었다. 심장 검사 결과, 심한 관상 동맥 질환을 시사하는 소견이 확인되어 근처 대학 병원에서 관상동맥 조영술을 시행하였다. 그 결과 3개의 관상 동맥에 심한 병변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2001년 미국에서 시행된 설문조사에서 여성들은 건강을 가장 위협하는 질환으로 유방암을 꼽은 반면, 심혈관질환을 지목한 경우는 10%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60% 정도의 여성은 심혈관 질환이 자신과는 무관한 질환이라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나라에서도 다르지 않다. 흔히 심혈관 질환은 남성의 전유물이며,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듣는 돌연사, 급성 심근 경색증 또한 여성에게는 흔치 않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심혈관 질환의 실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큰 착각 속에 빠져 있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심혈관 질환의 발생은 남성이 여성보다 10세 정도 빠르지만, 여성이 폐경기를 지난 이후에는 빠르게 증가하여 65세경이 되면 오히려 여성의 발병률이 더 높아진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심혈관 질환에 의한 사망률은 여성이 남성에 비하여 높다는 것이다.

왜 심혈관 질환 사망률은 여성이 높은 것일까?

첫째, 여성의 경우에는 관상 동맥 질환의 대표적인 증상인 흉통을 포함한 제반 증상이 불분명하고 애매한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심혈관 질환보다는 폐경기 증후군, 홧병, 신경성, 위장 질환 등으로 오인되어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둘째, 손쉽게 시행할 수 있는 비침습적 검사 방법(심전도, 심장초음파, 운동부하검사 등)을 통한 진단의 정확도가 떨어져, 심혈관 질환의 위험 요소를 포함한 제반 상황을 고려한 종합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자칫 다른 질환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심혈관 질환이 호발되는 폐경 이후 시기에는 동반 질환이 많고, 이 시기에 이환된 고혈압, 당뇨 또는 흡연 등은 여성에게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위험이 남성보다는 2-3배 이상 높다.
넷째, 적극적인 시술이나 수술보다는 소극적인 보존적 약물 치료를 선택하는 경우가 남성보다 높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진단이 애매하거나, 질환의 중증도가 심한 경우에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그 결과 사망률이 남성보다 높은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폐경이 되면서 여성은 여성 호르몬에 의한 심장 보호 효과가 사라지면서, 심혈관 질환이 급속히 증가하게 된다. 폐경은 신체적 변화 외에도 흔히 감정적 변화를 동반한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애매하고 다양한 증상을 유발하여 심혈관 질환의 특징적인 증상들을 구별하기 힘들게 만든다. 또한 중년 이후의 여성들은 그 동안 시부모, 남편, 자녀들을 내조하면서 참아왔던 스트레스와 폐경을 맞으면서 느끼는 심리적 변화 등이 겹치면서, 환자뿐 아니라 이를 진찰하는 의사들까지도 심심찮게 속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따라서, 여성의 심혈관 질환은 단순히 증상에 의존하기 보다는 심혈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 요소(고혈압, 당뇨, 이상지혈증, 흡연, 폐경, 가족력 등)를 가진 경우에는 예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위험 요소를 조기에 발견하여 적극적 생활 개선 요법과 더불어 적응증이 될 경우, 저용량 아스피린 등의 적절한 약물 요법을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관상 동맥 질환이 의심될 경우에는 과감한 진단적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확인 되었을 경우에는 적극적인 치료를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괜히 소극적으로 진단이나 치료를 미룬다면 병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아울러, 여러 가지 신체화 증상을 유발 시켜 진단을 어렵게 만드는 스트레스와 정신적 부담을 덜기 위해 자신과 주변의 노력을 요구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도 필요할 것이다. 농담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자상하고 배려심 많은 남편과 스스로를 책임지는 자녀들로 바꿀 수만 있다면 여성의 심혈관 질환을 진단, 치료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약하건데, 여성의 심혈관 질환에 대한 진단과 치료는 이제껏, 당연시 되었던 남성 위주의 진료 방침을 떠나서, 여성의 특성, 특히 폐경 이후 일어나는 여러 변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김진구 내과 김진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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