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문제 스스로 해결하는 또래상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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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여 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는 구도심 작은 학교 천안성정초등학교에서 ‘솔리언 또래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 8명 때문에 요즘 학교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친구 입장에서 이해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기 때문이다. 학급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갈등은 또래상담자를 통해 이해와 화합 모드로 변했다. 천안시청소년지원센터 도움으로 또래상담자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으며 자신도 변하고 그 모습을 본 친구들도 변했다. 무엇보다 상처 받은 친구들이 그들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이미지(맨 왼쪽)·김소미(맨 오른쪽) 학생이 또래상담(눈 감고 미로 찾기)을 통해 친구의 입장을 이해하는 게임을 하고 있다. 조영회 기자

#1. 지금은 전학 갔지만 얼마 전까지 천안성정초등학교에 다녔던 윤동주(가명·5년)군. 동주는 학교 가기 싫어하는 부적응 학생 중 한 명이었다. 부모의 이혼과 무관심으로 늘 사랑의 손길이 부족했다.

 아버지는 일찍 집을 나갔고 어머니 없는 방에 혼자 남아 TV만 보다 지각하기 일쑤였다. 상담교사가 매일 아침 동주의 집을 찾아 데려와야 했다. 수업에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동주의 학교생활에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 생겼다. 바로 학교에서 또래상담교육을 받은 친구 때문이었다.

 어느 날 친구들이 다가와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고 동주의 말동무가 됐다. 동주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친구에게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가정 환경은 서로 달랐지만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학교생활이, 친구를 대하는 태도가 모두 달라졌다.

 동주가 처음부터 친구를 받아들이진 않았다. 또래상담교육을 받은 정민혁(5년)군은 교육에서 배운 데로 동주에게 다가가 ‘경찰과 도둑 놀이’를 제안했다. 당시 동주의 반응이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민혁인 다음 날에도 다가갔다.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함께 밥을 먹고 교실로 돌아갈 때 항상 같이 가자고 했다.

다른 친구도 쉬는 시간이면 동주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동주의 어두운 표정은 사라졌고 작은 미소가 번졌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동주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등교시간에 맞춰 다니기 시작했고 그의 곁에는 든든한 친구들이 생겼다.

#2. 최근 성정초에 전학 온 이수정(가명·5년)양. 장애통합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학급에서 수업을 받게 된 수정이는 한 번도 윤소라(가명·5년)양과 같은 장애학생과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어색하다 못해 불편했다. 소라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함께 놀려고 하지 않았다.

 이때 솔리언 또래상담훈련을 받은 같은 학급 이예빈(5년)양과 송민진(5년)양이 나섰다. 예빈이와 민진이는 수정에게 “소라는 우리와 다른 것뿐이야. 차별하지 말고 차이를 인정하자”고 말을 건넸다. 비록 첫 걸음은 작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여 지금 학급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또래놀이를 할 때 친구(소라)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의 눈높이에서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친구와 자주하는 공기놀이지만 소라와 할 땐 그가 던진 공깃돌을 친구들이 받는 놀이로 새롭게 재구성해 즐겼다.

 또래상담을 받은 학생들의 작은 변화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전파되기 시작했다. 소라를 싫어했던 수정이도 예빈이와 민진이의 행동을 보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소라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소라가 점심시간 도서관을 갈 때 수정이가 함께 따라갔다.

 식사할 땐 소라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교실로 갔다. 음악시간 리코더 부르는 것이 서투른 소라에게 쉬는시간 운지법을 알려주는 등 수정이의 행동이 달라졌다.

 이런 변화는 수정이의 모습을 본 다른 친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소라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관심을 보였다. 친구의 다른 모습을 인정하고 같은 친구로 받아들인 것이다. 또래 상담교육을 받은 친구 덕분이었다.

친구 입장에 서는 게 또래상담 포인트

눈 감고 친구 마음 이해하기 교육.

3일 오후 천안성정초 상담실에서 ‘솔리언 또래상담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천안시청소년지원센터 이경화 상담교사가 달팽이 모양을 그린 흰 종이를 놓고 짝을 지어 앉게 했다. “볼펜을 이용해 달팽이 원 밖에서 안으로 선을 닿지 않고 들어가야 합니다. 볼펜을 잡은 친구는 눈을 감고 옆 친구는 선에 닿지 않고 갈수 있도록 설명해 주세요”

 게임이 시작되자 옆에서 길을 설명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커졌다. “위로 아니 옆으로 아니 아래로 좀더… 선에 닿는다. 옆으로…” 눈을 감은 친구는 앞을 볼 수 없어 답답했고, 이를 설명해야 하는 친구도 친구의 손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답답했다. 옆에 앉아 하는 게임 이후에는 서로 마주보고 앉아 다시 게임을 진행했다. 진행 방향을 모두 반대로 이야기 해야 하기 때문에 옆에서 말하는 것 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게임이다.

 게임이 끝나자 상담교사의 조용한 설명이 이어졌다. “마음이 어땠나요? 친구의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쉽지 않지만 항상 내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말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임이랍니다.”

 또래 상담교육에서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보도록 하기 위해 ‘인간 장벽 뚫기 게임’ ‘눈감은 친구에게 마주보고 길안내 하는 활동’ 등이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또래상담은 일정한 훈련을 받은 청소년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또래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과정을 통해 문제해결을 돕기 위한 교육이 진행된다. 청소년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학급에서 친구와의 관계를 높이기 위해서다.

 자질훈련과 기술훈련으로 구성된다. 자질훈련은 존중, 공감, 진실성을 기초로 하고 있다. 기술훈련은 청소년이 상담적 방법으로 친구를 도울 수 있도록 대화하는 방법, 정서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 대화의 연속선에서 상담의 기법을 활용해 도울 수 있는 개입방법 등을 제공한다.

 훈련을 받은 또래상담자 학생은 또래를 조력(助力)하는 일종의 준상담자를 말한다. 천안시청소년지원센터는 고민을 친구와 의논하는 청소년기의 특성을 고려해 청소년을 상담자로 훈련, 친구를 돕는 ‘솔리언 또래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홍은영 상담원은 “청소년 친구들이 또래상담을 통해 의사소통 향상, 친구관계 개선, 학교폭력 예방 등 위기청소년의 예방과 조기 개입을 위한 준상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천안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주목되는 때에 청소년이 또래를 돕는 또래상담 활동이 촉진될 수 있도록 교사, 학부모,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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