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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으로 머리 맞으며 배웠다 스타 애널리스트들 ‘30년 종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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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대우증권 리서치센터는 증권업계에서 ‘애널리스트 사관학교’로 통한다. 지난 30년간 수많은 ‘스타’ 애널리스트를 배출하며 한국 증권 리서치의 발전을 주도해 왔다.

 많을 때는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절반 이상이 대우 출신으로 채워진 적도 있었다. 지금도 내로라하는 리서치센터장 상당수가 이곳을 거쳤다. 신성호 리서치본부장(우리투자), 이종우(솔로몬투자)·조용준(신영)·양기인(신한금융투자)·우영무(HMC)·최석원(한화)·이종승(NH)·조익재(하이투자)·서영호(JP모간) 센터장 등이다. 미래에셋그룹 강창희 부회장, 토러스투자증권 손복조 대표 등도 과거 대우 리서치 센터장을 역임했다.

 대우 리서치센터의 모태는 1984년 설립된 대우경제연구소다. 당시 미국·일본 리서치센터 조직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했다. 선진 분석기법과 다양한 지표를 활용해 내놓은 대우 리서치센터의 보고서들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다른 증권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었다.


 특히 대우 리서치센터는 특유의 혹독한 도제(徒弟)식 교육으로 유명했다. 선배인 ‘사수’는 ‘부사수’인 후배를 일대일로 지도하면서 자신이 배운 것을 전수해 주는 방식이다. 대다수의 부사수는 사수한테 볼펜으로 머리를 맞아 가며 배웠다.

 대우경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던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후배들에게 ‘나는 배추나 연탄을 나르는 트럭을 타고 통금시간에 퇴근했다’(당시에는 통금시간이 있었는데, 이런 트럭은 통행금지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말로 연구를 독려했다”고 회고했다.

 국내 ‘1호 애널리스트’로 불리는 심근섭 당시 전무의 카리스마도 대단했다. 80~90년대 ‘족집게’ ‘심도사’ 등으로 불리며 놀라운 예측력을 자랑했던 인물이다.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애널리스트는 현재까지도 ‘심스스쿨’ ‘심근섭 학파’로 불린다.

 90년대 후반까지 대우 리서치센터는 한국 증권계 리서치센터의 맏형이자 종가(宗家) 역할을 했다. 우리투자증권 신성호 전무는 “90년대 대우 리서치센터는 여의도의 법이자 질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99년 대우 사태로 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 리서치센터는 위기를 맞는다. 이후 3년간 20명의 베스트 애널리스트가 다른 증권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핵심 인력의 유출로 대우 리서치센터는 침체기를 겪는다. 각종 애널리스트 상을 휩쓸다시피 하던 대우증권에서 ‘베스트 애널리스트’ 배출이 뜸해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솔로몬투자증권 이종우 센터장은 “역설적으로 당시 대우증권에서 나간 인력이 국내 리서치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한국 증시에 긍정적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왕의 귀환’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간 유지됐던 순혈주의를 포기하고 외부에서 가능성 있는 인력을 데려왔다. 그리고 오랜 기간 축적된 시스템과 노하우, 끈끈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2000년대 중반 다시 업계 정상에 복귀했다. 2002년부터 4년간 대우 리서치 센터장을 지냈던 전병서 경희대 중국경영학과 교수는 “당시 연구원들을 불러 놓고 ‘3년 내로 1등을 되찾지 못하면 다 같이 밥숟가락을 놓자’고 했다”며 “돌이켜 보면 조직 내에 잠재했던 ‘1등 자부심’이 정상 탈환의 큰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스타로 뜨기도 쉽고, 금세 사라지기도 다반사인 증권업계에서 대우 출신이 돋보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특별한 인재관리 시스템이 꼽힌다. 도제식 교육이라지만 혼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수는 부사수에게 모든 것을 전수한다. 자신의 정보 수집 노하우, 기업분석 기법, 10여 년간 쌓아 온 자료를 아낌없이 준다. 여기에 ‘학연과 지연을 배제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 훈련시킨다’는 원칙을 지켰다.

 조직 내 열린 문화도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매주 열리는 세미나에서는 서로 연구한 결과를 공유한다. 새내기 애널리스트가 간부급 애널리스트와 다른 의견을 내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대우 리서치센터 출신은 대우증권을 떠난 이후에도 꾸준히 ‘동문회’를 열 정도로 끈끈한 조직문화를 자랑한다.

 대우 리서치센터 출신인 김석중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대표는 “특정 분야만 연구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국제·투자은행(IB)·영업 등 리서치 밖의 업무도 경험하게끔 했다”고 설명했다.

 효율적인 데이터베이스(DB) 활용도 한몫했다. 대우 리서치센터는 다른 증권사보다 10년 이상 앞서 일찌감치 방대한 DB를 축적해 왔다. 센터장을 역임한 홍성국 대우증권 전무는 “현재는 DB 규모에 비교 우위에 있다고 말하긴 힘들다”며 “하지만 오랜 경험에서 축적된 DB 활용 및 분석에 대한 노하우는 다른 증권사가 아직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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