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니 학습효과 … “석유 증산” 외치는 알나이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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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알리 알나이미(76)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다. 그는 세계 최대 산유국 밸브를 조였다 풀었다 한다. 이런 그가 일요일인 5일 오스트리아 빈에 출현했다. 빈에서 열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OPEC 회의는 8일(현지시간)로 예정돼 있다. 그가 사흘이나 일찍 빈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로이터통신은 “원유 증산을 사전에 조율하기 위해서”라고 5일 보도했다.

 산유국들의 고유가 재미가 한창인 요즘 원유 증산은 상식과 어긋나 보일 수 있다. 원유를 많이 생산하면 값이 떨어져 산유국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알나이미 장관은 5월 하순 들어 증산 가능성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달 2일에도 “필요하다면 원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고 발언했다.

아메드 야마니(위쪽 큰 사진), 알리 알나이미(아래 작은 사진)


 알나이미 장관의 증산 발언 이면엔 스승인 아메드 야마니(81) 전 석유장관의 쓰디쓴 경험이 있다. 야마니는 1962~86년까지 24년 동안 사우디 석유장관을 하면서 73년과 79년 두 차례 석유 파동을 경험했다. 두 번 모두 원유시장 침체기가 뒤따랐다. 원유 값이 뛰는 바람에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져 기름 수요가 줄어든 탓이었다. 고유가가 스스로 무덤(경기침체)을 판 꼴이었다. 원자재 전문가가 말하는 ‘원유 값의 자기 파괴’ 과정이다.

 최근 자기 파괴 조짐이 나타났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고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 경제가 기우뚱하기 시작했다. 침체의 진앙인 주택시장이 사실상 더블딥(이중 침체)에 빠졌다. 가계소비도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산업생산도 활력을 잃을 듯하다. 2차 양적 완화(QE)가 이달 말로 끝나면 경제 흐름이 본격적으로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알나이미 장관이 스승(야마니)이 겪은 자기 파괴 과정을 피하려면 증산을 해 유가를 떨어뜨려야 한다. “사우디 쪽은 1배럴(158.9L)당 80달러 선을 적정 수준으로 보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이를 위해 사우디는 하루 80만 배럴 정도를 더 생산하고 싶어한다. 사우디 하루 생산치 10% 정도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사우디 처지에선 어려운 일도 아니다. 현재 생산량이 채굴 가능한 양보다 상당히 적다.

 그러나 원유 증산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OPEC란 카르텔을 통해 합의해야 한다. OPEC의 2위 산유국인 이란과 반서방 색깔이 짙은 베네수엘라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두 나라는 “세계 경제는 배럴당 90~100달러 수준에서도 잘 작동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유럽의 침체를 걱정해 증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다.

 리비아 사태도 OPEC의 증산 결정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카타르·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는 리비아 반정부 세력을 지지한다. 이들 나라는 “OPEC가 나서서 반정부 쪽을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면에 이란·베네수엘라는 리비아에 대한 서방 개입을 강하게 비판했다. 오스트리아 빈엔 “리비아 친정부와 반정부 대표가 파견돼 치열하게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에서 “OPEC가 쉽게 증산에 합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하지만 나이지리아와 걸프 국가만이 참여한 증산 발표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에 헤지펀드들은 “증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원유 값 상승 쪽에 더 많은 돈을 베팅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이달 6일 보도했다.

강남규 기자

◆아메드 야마니 =별명은 ‘석유 황제’다. 하지만 그는 사우디 왕족 출신이 아니다. 1930년 사우디 메카의 이슬람 율법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미국 하버드·뉴욕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서른두 살 때인 62년 사우디 석유장관에 올랐다. 별명이 말해주듯 73년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움직여 원유 값을 한 달 새 3.9배 끌어올린 주인공이 됐다. 반발하는 서구사회를 향해 “그래도 원유가 코카콜라보다 싸다”고 일갈했다. 이란 회교혁명으로 촉발된 79년 2차 오일쇼크 때 그는 원유 증산을 미루는 방식으로 유가 상승을 부추겼다. 하지만 그가 끌어올린 원유 값은 80년대 초 세계 경제가 더블딥에 빠지면서 추락했다. 이어 10여 년간 저유가 시대가 지속돼 몇몇 산유국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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