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저당 설정비, 내달부터 은행이 대부분 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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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발생하는 근저당 설정비용을 다음 달부터는 고객이 아닌 은행이 대부분 부담한다.

 예컨대 3억원을 대출 받을 때 현재는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대출자가 225만2000원 정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36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 인지세도 지금까지는 대출자가 전액(15만원) 부담했지만, 앞으로는 절반(7만5000원)만 내면 된다. 이와 함께 은행이 설정비를 내는 조건으로 대출금리를 0.2%포인트 정도 올려받는 것도 금지된다.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할 수 없다는 의미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근저당 설정비를 은행이 부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은행 공동 표준약관 개정안을 7월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은행별로 시행 시기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다음 달부터 개정 약관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는 설정비를 은행이 부담하도록 명시한 공정거래위원회의 2008년 은행 표준약관이 정당하다고 서울고법이 최근 판결한 데 따른 것이다. 소비자 항의도 잇따라 더 이상 종전 관행을 고수하기도 어려웠다.

 공정위의 표준약관은 각종 근저당 설정비용의 부담 주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근저당권 설정비용 가운데 등록세·지방교육세·등기신청 수수료 및 법무사 수수료, 근저당 물건의 조사 또는 감정평가 수수료는 은행이 부담하게 했다. 반면 국민주택채권 매입비는 채무자(또는 설정자)가 부담한다. 기타 부담 주체가 불분명한 비용은 은행과 채무자(또는 설정자)가 반반씩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근저당권을 말소하거나 돈을 갚지 않아, 다시 말해 채무자의 잘못으로 근저당권이 행사될 때는 근저당 물건의 조사 또는 감정평가 수수료는 채무자(또는 설정자)가 부담하게 된다.

돈을 갚지 않아 발생하는 각종 조사·추심·통지 비용도 모두 채무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만일 이를 갚지 않을 경우 약정금리(연 6% 이내)를 가산해 물리도록 하고 있다.

은행들은 이처럼 공정위 방침을 따르면서도 이와는 별도로 법적 대응은 계속하기로 했다. 은행들은 서울고법의 판결에 불복해 지난 4월 말 대법원에 재상고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해외에서는 일반적으로 담보 제공 비용을 빌린 측이 부담한다”면서 “파기 환송심이라 판결이 뒤집히는 게 힘들다는 걸 알고 있지만 재상고 절차를 그대로 진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소비자연맹은 근저당권 설정 비용을 소비자에게 부담시키는 대출약관 자체가 무효이기 때문에 과거 고객이 부담한 설정비까지 돌려줘야 한다며 소송 참가자를 모집 중이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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