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치권 수사 시작하는데 중수부 폐지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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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 사법개혁특위 검찰관계법 소위가 지난 3일 대검 중수부의 직접 수사 기능을 폐지하는 방안을 법제화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검찰은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수사를 언급하며 “전투 중에 장수의 칼을 거두려는가”라며 반발하고 있다. 검찰은 오늘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한다고 한다. 중수부는 지난 주말 저축은행사태 수사 활동을 쉬어 ‘항의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을 부르기도 했다.

 국회 특위는 이에 대해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를 모면하려는 검찰의 전술”이라고 비난한다. 여야는 현재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에 합의하고 대안으로 특검 상설화(한나라당)와 특별수사청 신설(민주당)을 논의하고 있다. 사개특위는 활동시한이 6월말까지여서 예정된 절차에 따라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민주당 소속 박영선 소위 위원장은 “검찰이 수사를 중단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간을 끌어 수사기능 폐지를 무력화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이런 상황에는 몇 가지 우려할 만한 부분이 있다. 여야가 이미 합의한 것이라 해도 저축은행 비리에 대한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때에 국회가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를 천명한 것은 수사에 영향을 줄 위험이 있다. 수사를 받는 피의자 측이 수사가 축소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행동할 수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 저축은행의 로비 비리가 정치권 쪽으로 인화(引火)되는 상황에서 국회가 수사기능 폐지를 언급하니 정치권이 방어막을 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부를 수 있다. 사실이 아니라면 국회는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친 격이다.

 이번 저축은행 사태는 금감원과 금융위원회, 그리고 감사원 감사위원 등 감독기관이 비리 은행의 보호막이 된 요지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보면 고위 공직자를 전담하는 특별수사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확인되고 있다. 중수부 수사기능을 폐지하더라도 더 확실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게 분명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는 특위시한에 쫓겨 서두를 게 아니라 충분한 논의를 거쳐 가장 효율적인 수사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파동은 그런 신중하고 종합적인 접근에 흠집을 줄 우려가 있는 것이다.

 검찰은 저축은행 수사를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 여부’라는 작금의 검찰 이해(利害) 현안에 활용하려고 해선 안 된다. 검찰이 중수부 수사기능을 살려내기 위해 저축은행 수사를 질질 끌고 국회 특위활동 연장을 도모한다는 의심이 있는 게 사실이다. 검찰은 이런 시각을 각별히 유념해 바른 자세로 수사에만 전념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수사에서는 그동안 원성(怨聲)을 부른 월권행위나 지나친 정치적 고려가 있어서는 안 된다. 한두 가지 실수가 저축은행 비리 척결이라는 수사의 몸통을 해칠 수 있다. 저축은행 사건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벌어진 최대 비리가 되고 있다. 서민을 포함한 일반 시민의 분노와 한탄이 하늘을 찌른다. 국회와 검찰은 이 같은 구조악(惡)을 제거하는 데에 엇박자를 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