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칭기즈칸도 모기 앞에선 ‘나약한 인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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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호 32면

기원전 323년 6월 10일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에서 사망했다. 32살의 젊은 나이였다. 그의 사인을 두고 독살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학자들은 말라리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알렉산더 전문가인 영국의 ‘앤드루 척’은 그 근거로 알렉산더 대왕이 죽기 2주일 전 배를 타고 바빌론 교외의 늪지대를 순찰했던 사실을 든다. 이 지역은 지금도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지역이다. 말라리아의 잠복기가 9일에서 14일이니까 딱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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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인물인 칭기즈칸의 사망원인도 명확하진 않지만 말라리아를 앓다 죽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래서 말라리아 희생자 자료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소설 중에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이라는 책이 있다. 체사레 보르자는 마키아벨리가 직접 만나보고 '군주론'을 쓸 때 모델로 삼았던 실존 인물이다. 당시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로서, 이탈리아 통일을 꿈꾸는 젊고 잘생긴 유력한 야심가였다.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를 찾아가 도시계획을 논의한다. 그러나 그의 꿈도 아버지인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말라리아로 죽으면서 좌절되었다. 결국 말라리아 때문에 대제국 건설의 큰 꿈들이 좌절되고, 인류 역사가 크게 바뀐 셈이다.

이 밖에도 말라리아로 사망한 역사적 인물들은 로마 황제와 유럽의 왕, 교황들을 포함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테레사 수녀, '신곡'을 쓴 단테, 성 어거스틴도 모두 말라리아의 희생자다. 또 말라리아에 걸려 고통 받았던 사람들도 인도의 간디, 베트남의 호찌민 등 무수히 많다. 미국의 대통령 중에서도 초대 조지 워싱턴, 5대 제임스 먼로, 7대 앤드루 잭슨, 16대 링컨, 그랜트, 가필드, 시어도어 루스벨트, 심지어 케네디까지 8명이나 말라리아를 앓았다. 조지 워싱턴은 일생 동안 다섯 번이나 말라리아를 앓았다는 기록이 있다.

지난 100년 동안 말라리아로 죽은 사람이 1억5000만 명에서 3억 명 사이라고 한다. 20세기 초 인도에서는 사망자의 반 이상이 말라리아로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인 33억 명이 말라리아 위험지역에 살고 있다. 주로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 등이다. 2008년에만 108개 나라에서 2억4700만 명이 말라리아에 걸렸다. 그중 사망자가 200만 내지 300만 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간 약 4000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한다.

그래서 WHO는 매년 4월 25일을 ‘말라리아의 날’로 정하고, 2015년까지 지구상에서 말라리아를 퇴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말라리아가 모기에 의해 옮겨진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그전에는 공기로 전염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말라리아라는 병 이름도 이탈리아어 중에서 나쁘다는 뜻의 접두어 ‘mal’과 공기라는 뜻의 ‘aria’가 합쳐진 단어다. 말라리아는 ‘플라스모디아’라는 단세포 열원충이 핏속에 기생하면서 병을 일으킨다. 이 열원충이 핏속 적혈구에 살면서 분열하다 적혈구를 파괴하고 나온다. 이때 사람 몸에 40도 이상의 고열이 난다. 이 열원충은 4종류가 있는데, 그 종류에 따라 열을 내는 주기도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유행하는 것은 삼일열원충으로 하루 걸러 한 번씩 열을 낸다.

말라리아와 관련된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는 모두 2명이다. 첫 번째 수상자는 영국의 로널드 로스다. 그는 새를 통해 말라리아를 연구하면서 회색모기가 새들에게 말라리아를 옮긴다는 것을 발견한 공로로 190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두 번째 수상자는 1907년 프랑스의 라브랑이다. 그는 말라리아 환자들의 피를 조사하다 환자들의 적혈구 안에서 ‘플라스모디아’라는 기생 원생동물을 발견했고, 그것이 말라리아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만 해도 모든 질병은 세균 감염으로 생긴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세균이 아닌 미생물에 의해 말라리아가 발병한다는 것을 인정받는 데 여러 해가 걸렸다.

모기의 계절 여름이다. 모기는 전 세계에 약 3000종, 한국에는 47종이 있다. 그중 말라리아를 옮기는 것은 중국 얼룩날개모기다. 원래 모기는 식물 즙이나 과즙, 이슬 등이 주식이다. 모든 모기가 피를 빨아먹는 것은 아니다. 교미를 통해 수정란을 가진 암컷 모기만 단백질 등 영양 공급을 위해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다.

피를 빨면서 모기는 침샘에서 피가 빨리 굳지 않게 하는 물질을 사람의 피부에 주입한다. 이때 말라리아, 뇌염 등 질병을 옮긴다. 말라리아에 걸려도 치료제가 개발돼 완치될 수는 있다. 하지만 아직 개발된 백신은 없다. 따라서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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