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만남은 우연 아닌 필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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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호 31면

오랜만에 동네 서점에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무수한 책들이 예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제법 이름이 난 책들은 진열대에서 눈길을 끌었다.몸집이 작은 책과 큰 책이 어우러져 단정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책에 관심을 보이자 점원이 다가왔다. 상냥한 목소리로 “무슨 책이 필요합니까”라고 물었다. 그의 말에 미소만 지었다.

삶과 믿음

서점 구석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겉장을 넘겨보니 출판 연월일은 2005년 7월 23일. 마음 다스리기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묶은 단행본이다.
서점을 제법 자주 들렀어도 발견하지 못한 책이었다. 책장에 잘 정돈되어 있었지만 나에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책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나의 의식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서점은 6년 전부터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책을 발견하고 기쁨이 넘친 것은 알아차림에 대한 응답이었다. 책과 나는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었다. 관심을 갖자 책이 보이기 시작했다. 의식의 흐름이 맑아졌을 때 책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처럼 관심은 주위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온화한 에너지가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면의 에너지를 증폭시킨다. 그것이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아주 고귀한 것으로 바뀐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난다. 의식이 확장되고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변화의 속도를 감지한다. 의식이 정화될 때 그 흐름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의식의 흐름에 따른 느낌의 강도가 다르다. 이런 느낌은 어느 순간에 찾아온다. 그때마다 느낌을 존중해야 한다. 그 느낌을 축복해야 한다. 그래야 온전한 알아차림이 된다. 온전한 알아차림은 온전한 기쁨으로 이어진다.

계산대에 책을 내려놓자 주인장이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오래된 책을 고른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그 표정을 거부하기보다 그대로 받아들였다. 책과의 만남을 통해 마음에 평화를 얻었기 때문이다. 책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이치를 알아야 자기 주위의 사물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서점 문을 열고 나오면서 책과의 만남뿐 아니라 도로와의 만남, 간판과의 만남, 바람과의 만남, 지나가는 사람들의 주고받는 말소리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만남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었다. 이 모든 것은 알아차림에 대해 말해주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그 만남들을 그냥 지나쳤기에 진정함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주변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만남 자체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 만남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무한한 에너지가 서로 교류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나름의 파동과 선율이 있음을 알게 된다. 가만히 있어도 미소 짓는 과정이 반복된다. 미소는 맑음의 소식이요, 앎의 소식이다. 감사의 일깨움이다. 각성이 열리는 날 만남의 축복을 알게 된다. 새로운 시야가 열리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면서도 어느 곳에서든 관심과 집중을 하면 수많은 경이로움과 접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감각이 생생하게 깨어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잠시 거실에 앉아 책을 펼쳤다. 지은이가 말해주고자 하는 내용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선물을 받은 셈이다.


육관응 원불교신문 편집국장. 글쓰기사진을 통해 명상과 알아차림을 전하고 있다. 숲과 들을 접시에 담은 음식이야기, 자연 건강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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