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젊은이여 야망을 버리고, 자기 앞가림부터 충실해라”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골프존 김영찬(65·사진) 대표이사는 54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스크린골프란 새 분야를 개척했다. 2000년 설립한 골프존은 국내 스크린골프 시장의 84%를 점유하고 있다. 골프존의 시뮬레이터(모의연습기계)를 사용하는 스크린골프장만 전국 3800여 곳에 달한다. 자본금 5억원으로 시작한 회사는 11년 만에 매출 1840억원, 영업이익 620억원의 알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올해 그는 코스닥 상장이라는 또 다른 도전에 성공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골프존이 소프트웨어 업종으로 상장을 추진하자 사행성 산업이 아니냐는 반론이 나왔다. 공모가가 너무 비싸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공모주 청약경쟁률은 209대 1에 달했다. 지난달 20일 상장한 골프존은 단숨에 시가총액 1조원을 넘겼다.

아들인 김원일 공동대표와 함께 60.7%의 지분을 보유한 김 대표는 6000억원대의 ‘주식 부자’ 반열에 올라섰다. 서울 대치동 골프존 서울사무소에서 그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의 김 대표가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자리에 앉은 그는 낡은 검은색 가죽가방에서 펜과 수첩을 꺼내 들었다.

-가방을 오래 사용한 듯하다.
“10년 넘게 썼다. 가방뿐 아니라 옷도 아껴 입는다. 우리 세대는 보릿고개를 겪었기 때문에 첫째도 절약, 둘째도 절약이다.”

-학창 시절 집안이 어려웠나.
“그렇진 않다. 중산층 가정이었다. 농사와 사업을 하신 부모님 밑에서 2남2녀 중 막내로 평탄하게 자랐다. 하지만 절약은 몸에 배어 있다.”

김 대표는 1973년 홍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GM코리아에 입사해 브레이크시스템 업무를 맡았다. 그는 “일자리가 많지 않던 시절에 원하던 직장에 들어갔다. 운이 좋았다”고 회고했다. 79년에는 삼성전자로 옮겨 통신 시스템 분야에서 일했다. 93년 시스템 사업부장으로 통신 서비스 업무를 다루다가 직접 사업을 해 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고심 끝에 만 20년간의 샐러리맨 생활을 접고 ‘영밴’이라는 부가통신 서비스업체를 차렸다.그가 도전한 첫 번째 아이템은 ‘700 전화정보 서비스’로 불리던 음성사서함(VMS) 사업이었다. 대전에 본사를 두고 서울과 부산에 지사를 낼 정도로 괜찮았다. 하지만 7년 만에 스스로 문을 닫았다. 김 대표는 “700 전화사업이 음란·퇴폐로 흐르는 것에 회의를 느낀 데다 경쟁자가 너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골프 관련 사업이었다. 그는 “10년차 골퍼로 한참 재미를 느끼던 시절이어서 골프에 관한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어떻게 스크린골프를 생각해 냈나.
“실내 골프연습장에서 벽에 대고 공을 때리는 게 영 재미가 없었다. 거리·타구 방향 등을 알 수 있으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호텔 피트니스센터 같은 곳에 있던 타구 분석용 골프 시뮬레이터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정확도가 떨어지고 고장도 잦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걸 제대로 만들면 수요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새 사업을 결심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자금도 많이 들 테고.
“큰 자금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나이 들어 용돈을 벌 수 있는 소일거리로 해 보자는 수준이었다. 당시 전국에 실내연습장이 3000개였다. 골프 시뮬레이터를 1년에 30~40개만 팔아도 소모품 갈아 주는 돈까지 합치면 노후대책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업이 예상보다 훨씬 번창했다.
“처음에는 연습장별로 하나 둘 팔리다가 2003년께 골프 시뮬레이터만으로 연습장을 꾸미겠다는 곳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스크린골프장의 시초다. 스크린골프장이 늘면서 20억~30억원 하던 연간 매출이 2005년 100억원대로 증가했다. 이쯤에서 그만둘지, 진짜 비즈니스를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한 번 시작한 이상 그만두기 힘들 것’이라고 하더라. 고심 끝에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페달을 밟아 보기로 했다.”

-갑자기 회사가 커지면 회사 경영이 버거울 수도 있었을 텐데.
“골프존은 창립 때부터 어느 벤처기업보다 미션과 비전에 대한 컨센서스가 잘 이뤄져 있었다. 삼성전자 재직 경험이 도움이 됐다. 신사업을 추진할 때 먼저 업(業)의 개념을 만들고 미션을 정립한 뒤 디테일을 만들어 가는 훈련이 잘 돼 있었다.”

-시장에서 어떤 점이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나.
“기존에도 골프 시뮬레이터를 만드는 업체는 있었다. 하지만 골프장 인터넷 홈페이지의 지도를 보고 대충 만들었기 때문에 현장감이 떨어졌다. 우리는 골프장에 직접 찾아갔다. 골프장 설계도면을 받고 일일이 동영상을 찍었다. 그 대신 골프대회 중계방송에 타구의 거리와 방향을 시뮬레이션으로 제공해 주는 ‘윈윈’ 형태의 협약을 맺었다. 캐디들에게는 골프장의 특성을 꼬치꼬치 물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현장감을 살린 게 성공 포인트였다.”

-노후대책으로 시작해 1조원짜리 기업을 일군 셈이다. 첫 직장 들어갈 때처럼 운이 좋았던 건가.
“내 앞가림에 충실했을 뿐이다. 늘 그렇게 살아왔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직원들에게 보내는 최고경영자(CEO) 메시지를 통해서도 ‘젊은이여, 야망을 버려라’라고 조언했다. 책상 앞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쓰지 말라고 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내는 게 진정으로 야망을 갖는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더 큰 일이 주어진다. 골프존도 지금 사업을 열심히 하면 그 이상의 어도(魚道·물고깃길)가 주어질 것이라 믿는다.”

-골프 실력은.
“구력 20년에 평균 핸디캡 12(84타) 수준이다. 사람들과 어울릴 정도는 된다. 베스트 스코어는 3오버파(75타)다. 내 휴대전화 끝자리가 1872다. 18홀을 이븐파 72타로 치는 걸 목표로 한다는 의미다.(웃음)”

-스크린골프가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됐나. 스크린골프를 많이 하면 스윙 폼이 무너진다는 지적이 있다.
“당연히 도움이 됐다. 스윙이 무너진다는 의견에 절대 동의하지 못한다. 지금 골프존의 시뮬레이터 영상은 실제 골프장과 99% 일치한다. 지형지물을 모두 항공 촬영하기 때문에 높낮이가 그대로 반영된다. 스윙이 망가진다는 것은 괜히 지어낸 얘기다. 골프존에서는 스윙 후 바로 동영상을 통해 자신의 스윙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가상 필드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실전 적응능력이 실내골프연습장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런데 어떻게 스윙이 나빠지겠나. 스크린골프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 차이에 불과하다.”

-‘스크린 싱글, 필드 백돌이(100타 골퍼를 지칭하는 은어)’란 말이 있다.
“일부 동의한다. 스크린골프가 에이밍(목표 설정)이 잘 돼 있기 때문이다. 목표지점을 향해 자세를 잡고 칠 수 있으니까 필드보다 쉽게 느껴지는 거다. 그러나 필드에서는 에이밍 잡는 데만 3년이 걸린다. 또 하나는 자주 가면 스크린골프장이건 필드건 요령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스크린골프장은 한 달에 10번도 가지만 필드는 보통 1년에 10번 정도밖에 못 가지 않나. 필드에 자주 나가지 않는 골퍼들은 요령을 터득하지 못해 스코어가 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향후 골프존의 성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국내 시장을 넓혀 가며 해외 진출도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반면 90년대 노래방처럼 포화상태에서 출혈 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 대목에서 김 대표는 손으로 X표를 그어 가며 “노래방처럼 될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3800여 개의 스크린골프장에 1만8000여 개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전국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제아무리 대기업이라도 후발 주자가 들어오기 힘들다. 돈 있고 기술 있다고 다 경부고속도로를 깔 수 있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골프존을 보면 모션센서 게임 ‘위(Wii)’로 성공한 닌텐도가 연상된다는 얘기가 있다.
“닌텐도처럼 되고 싶지 않다. 7만~8만원을 주고 소프트웨어 사서 보통 3개월 지나면 안 한다. 상품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 아니냐. 돈 받고 팔아먹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나는 롤모델을 삼성으로 삼고 있다. 물론 이미 존재하는 산업 분야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경쟁해 일류가 된 삼성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걸 만들어 낸 골프존은 DNA가 다르다. 하지만 조직의 방향 설정이나 위기대응 능력은 본받을 만하다.”

-10년 후 골프존은 어떤 모습일까.
“앞으로 일본 도쿄·오사카, 중국 상하이, 캐나다 토론토 등 해외 거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스크린골프를 글로벌 시장에 수출하겠다. 다양한 사업을 접목할 수도 있다. 스크린골프장에서 뉴스 시청하고, 개봉 영화를 보고, 레슨프로 강의도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 표준산업 분류에도 스크린골프를 넣겠다. 용어나 표준규격을 만들고 전국체전·아시안게임을 넘어 올림픽에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도록 하고 싶다. 전 세계적인 골프 제국을 만드는 게 목표다.”

-가능할까.
“내가 원래 좀 ‘뻥’이 세다. 그런데 그거 아는지 모르겠다. 뻥이 없으면 꿈도 없다.”

이태경 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