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총선용인가 … 의원들의 ‘팩트 없는 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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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욱
정치부문 기자

2일 국회의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여야 의원들은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한 폭로전을 벌이기에 바빴다. 양측 선봉장은 이석현(민주당)·신지호(한나라당) 의원이었다. 이 의원은 30분 동안 9건의 의혹을 제기하면서 여권 인사 8명의 이름을 거론했다. 신 의원은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를 타깃으로 삼았다. 5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부산저축은행의 캄보디아 투자에 김 원내대표가 연루된 의혹이 있다는 게 신 의원의 주장이었다.

 이런 폭로 덕분에 이 의원과 신 의원은 3일자 조간 신문에 이름을 낼 수 있었고,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도 초대받았다. 그럼 두 사람이 제기한 의혹은 맞는 걸까. 현재로선 어떤 것도 사실로 입증된 게 없다. 이석현 의원은 우리금융지주의 삼화저축은행 인수와 관련해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이 사전에 의논했다며 둘의 회동이 이뤄졌다는 식당의 사진과 좌석 배치도를 제시했다. 하지만 곽 위원장과 신 명예회장이 식당에서 만났다는 사실만 가지고 의혹이 있다고 몰아붙이는 건 지나치다. 이 의원은 “(회동) 다음 달에 삼화저축은행은 우리금융지주에 성공적으로 인수돼 살아났다”고 했는데 그는 회동과 삼화저축은행 ‘회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열쇠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 의원이 제기한 다른 의혹들은 더 문제다. 그는 “…라는 소문이 파다하다”라거나, “…라는 얘기가 있다”는 말만 나열했을 뿐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어떤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

 신지호 의원도 무책임해 보인다. 그가 증거라고 제시한 건 김진표 원내대표의 출입국관리기록뿐이었다. 그걸 근거로 그는 “대선이 있던 2007년에 여당 의원이 캄보디아에 세 번이나 간 건 정상이 아니다”고 했다. 또 “저축은행 간부들의 캄보디아 체류 시기가 김 원내대표와 겹치거나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김 원내대표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의원의 ‘아니면 말고 식 폭로’는 당내에서조차 비판을 받았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신 의원이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언론을 타려 한 것 같지만 그의 주장에는 팩트(fact·사실)가 너무 부족하다”고 했다. 민주당에선 “이 의원이 또 헛발질을 할까 겁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 안상수 전 대표의 아들이 서울대 로스쿨에 부정입학했다는 틀린 주장을 했다가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와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3일 의원들이 의원들에 대한 비리 의혹을 제기하려 할 땐 서로 사전확인 절차를 거치기로 합의했다. 이런 합의는 꼭 지켜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달 말부터 시작될 저축은행 사태 국정조사는 난장판이 될 수도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튀어보려는 제2, 제3의 ‘묻지마 폭로’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궁욱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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