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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 순자를 찾아라!!!

중앙일보

입력

예전에 화가 지망생 소년 네로와 그의 애견 파트라슈의 생활을 담은 "플란더스의 개"라는 TV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30대 초중반 쯤 되면 어린 시절 이 애니메이션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릴테고, 그 이하라도 다른 경로를 통해 최소한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캐릭터에 대해 들어 본 적은 있을 것이다.

19일 공개되는 〈플란다스의 개(우노 필름 제작)〉는 제목을 제외한다면, 과거의 애니메이션과 전혀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영감조차 받은 흔적이 없는, 전혀 다른 영화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조망한다면 오히려 "강아지 유괴사건"이라는 제목이 어울릴 것 같은 이 영화는 장르적 관습과도 별 관련이 없다.

영화의 주인공은 윤주(이성재)라는 인문계 대학원 졸업자다. 그는 교수로 임용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로비에 능숙하지 못해 다른 경쟁자에게 밀려 난 처지로 곧 백수다. 두 살 많은 연상의 아내와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며, 개를 싫어한다.

사실 그가 개를 싫어하는 이유는 개 자체를 싫어한다기보다, 자신의 처지와 관련되어 개가 짖는 소리가 그에게 스트레스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극도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이 영화를 단순한 코미디로 생각할 수 있는 관객들에게 후반부 이 영화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때에 대비한 일종의 복선이자 암시다.

개를 없애 버릴 충분한 용의를 가지고 있는 윤주는 우연히 개 한 마리를 발견하고 그 개가 바로 자신의 신경을 긁어 왔던 개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죽이려고 하다가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지하실 한 구석에 버려 둔다.

그리고 원래 개의 주인인 꼬마 여자애가 개를 찾기 위해 전단을 돌린다. 전단 부착 허가를 내주는 도장을 찍어 주던 아파트 관리소 직원 현남(배두나)은 꼬마 아이의 개 수색 작업을 진심으로 딱해 하며 도와준다. 그리고 개 실종 사건은 잇달아 발생한다.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하는 봉준호 감독은 이미 그전부터 차세대 유망주 감으로 손꼽혀 온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의 단편 〈지리멸렬〉(단편 영화 모음으로 비디오 출시되어 있다)은 사회 지도층의 이중성을 일상적인 모습을 담아 포복절도하게 보여 주면서 교묘하게 감추어진 그들의 본질을 짚어 내는데 성공한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의 초반부 설정으로만 보면 개 유괴범이 누구고 그것을 밝혀 나가는 과정이 중요시되는 미스테리/코미디 류의 영화인 듯 하지만, 두 번째 개가 어떻게 실종되었는가(이것은 영화 전체적인 복선과 관련이 있다)를 보여주는 장면(중반부 쯤 된다)을 지나면 영화는 좀 더 다른 느낌을 동반한다.

그것은 개를 싫어 하던 사람이 일상 속에서 벌어진 개 실종 사건을 통해 그 자신에게 어떤 속성이 있었는지를 발견하게 되는 문제다. 즉 일상 속의 작은 사건을 통해 우리는 자기 자신과 또 자신이 속한 사회가 어떤 곳인지를 알게 되는 그런 문제며, 그런 느낌이다. 이렇게 볼 때, 사실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단편 〈지리멸렬〉이 표방했던 문제의식과 가까운 느낌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결말은, 상당히 서로 다른 뉘앙스를 풍기고 있음에도 지난 해 한국에서 공개된 〈함정〉이라는 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일관되게 갖고 있는 웃음에 대한 힘이 막판에 아예 실종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 최대의 클라이막스인 결말 부분에 나오는 현남이 세 번째로 실종된 개를 되찾는 옥상 장면은 웃음과 긴장감이 교차하는(특히 여러분이 개를 좋아한다면 이 장면의 긴장도는 더할 것이다) 인상적인 장면이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의 두 주연배우 이성재와 배두나는 호연했으며, 특히 배두나는 귀여움과 씩씩함이 조화된 스무 살 즈음의 아가씨 역을 아주 잘 소화하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개들은 모두 담당 조련사와 의료진 입회 하에 어렵고 위험한(정말로!) 연기를 해냈다. 2월 1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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