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고리 원전 1호기와 반값 시리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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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보름 전 고리 원전을 다녀왔다. 단지 초입에 보이는 작은 건물이 1978년 준공된 고리 1호기다. 이웃한 신형 원전들에 비해 영 볼품없고 초라하다. 요즘 수명 연장을 놓고 손가락질받는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고리 1호기가 언제 가동을 끝낼지는 전문가가 판단할 영역이다. 다만 이 허름한 원전이 사고뭉치로 함부로 저주받기엔 너무 억울하다. 그곳에는 우리 앞 세대의 땀과 눈물, 그리고 미래를 읽는 혜안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원전 건설을 결심한 것은 70년.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290달러였다. 고리 1호기에 들어간 1428억원은 정부 예산의 네 배였다.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을 뛰어넘는 국가의 운명을 건 도박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들은 모두 비등(沸騰)경수로였다. 반면 훨씬 못사는 한국은 값비싼 가압(加壓)경수로를 선택했다. 사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탁월한 안목이 무릎을 치게 한다. 미래에 불거질 원전의 안전성까지 꿰뚫어 본 결정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역사적 선택을 했다. 한국형 원전을 향한 과감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당시까지 어느 선진국도 원전 기술을 해외로 이전한 사례는 없었다. 운 좋게(?) 86년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하자 잠깐 새로운 공간이 열렸다. 전 세계가 원전 건설을 망설이면서 처음으로 구매자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분위기로 돌변했다. 전 정부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모두가 노(No)라 할 때 우리만 예스(Yes)를 외쳤다. 흔들리는 미국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을 찾아가 모든 기술 이전과 개량형 원전의 해외수출까지 보장받는 파격적 계약을 성사시킨 것이다.

 고리에서 감동을 먹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산란해졌다. 신문마다 온통 ‘무상·반값 시리즈’로 도배돼 있었다. 무상급식에서 반값 대학 등록금까지…. 요즘처럼 여야 가릴 것 없이 친절하고 인간적인 국회의원들은 본 기억이 없다. 혹시 복지 수혜자들이 받을지 모를 마음의 상처까지 헤아린다. “선택적 복지는 수혜자들에게 수치심과 굴욕을 안겨 준다”며 핏대를 세운다. 맞춤형 지원을 하기 위한 조사는 “정부의 감시로 사생활까지 침해한다”며 비난한다. 그 종착역이 무상·반값의 보편적 복지다.

 여기에는 철 지난 이념이 깔려 있다. 여전히 후진국마냥 결핍을 사회악으로 여기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론자들은 최저 소득계층 10%에 현미경을 들이대, 마치 빈곤이 보편적 현상처럼 부풀리고 있다. 이런 논리가 부잣집 아이에게도 공짜 점심을 먹이고, 대학등록금까지 듬뿍 지원하는 엉뚱한 결과를 낳는 것이다. 마치 정부가 아니라 자선단체를 보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선택적 복지는 “표 떨어지는 소리가 안 들리느냐”는 아우성에 묻혀 버렸다.

 이런 대중 추수주의(追隨主義)는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표만 쫓느라 정치인의 무게만 반값이 돼 버린다. 지금 우리 몸에는 가계대출과 재정적자라는 훨씬 치명적인 암(癌)이 퍼지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는 가계대출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해외에서 먼저 “한국 경제의 최대 위협요인”이라 야단이다. 남유럽 재정 위기를 떠올리면 선거 때마다 이렇게 나라 곳간을 거덜 내도 되는지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여의도는 이런 악성종양은 애써 외면한 채 보편적 복지와 저축은행 사태에 허우적대고 있다.

 허름한 고리 1호기 앞에 서면 절로 숙연해진다. 그 위대한 선택 덕분에 지금 우리가 ‘반값 전기’의 윤택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이제 선거 때마다 해외 순방이나 재래시장의 악수 대신 후보들 스스로 우리 앞 세대의 역사적 결단의 현장을 성지순례해 보면 어떨까 싶다. 찾아보면 고리1호기나 포항제철·경부고속도로 말고도 감동적인 현장은 널려 있다. 빈곤과 가난 속에서 어떻게 그런 위대한 선택을 했는지 가슴으로 느껴보라. 어쩌면 우리 유권자들도 당장의 공짜 점심과 반값 등록금보다 10년 뒤 희망과 감동을 줄 위대한 지도자의 출현을 훨씬 목말라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