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국가부채가 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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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전문가 : "더 걷힌 세금은 당장 나라 빚(국가채무) 갚는데 써야 한다. 빚을 눈덩이처럼 늘리는 것은 후손들의 재산을 아무 허락없이 쓰는 것이다. "

사회복지학자 : "외환위기후 경제를 되살리는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차이가 더 심해졌다. 이런 차이를 줄이기 위해 돈을 써야 한다. "

경기가 좋아지면서 세금이 3조5천억원이나 더 걷히자 생긴 말다툼이에요. ' 한 쪽은 "나라 빚 갚는 것이 급하다" 고 말하고, 다른 한 쪽은 "그보다는 가난한 사람의 생활을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 고 주장하고 있어요. '이들의 주장은 나라 빚을 지금 갚느냐 마느냐로 모아집니다.

나라 빚이 뭘까요?

가장이 번 돈으로 가정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처럼, 정부도 국민이 낸 세금으로 나라의 살림살이를 하지요. 정부가 세금을 왜 걷느냐고요□ 세상엔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요.

저녁때 길을 가다 보면 어둠을 밝혀주는 가로등이 있어요. 특히 요즘처럼 눈이 와 길이 미끄러운 때는 꼭 필요하지요.

이 가로등은 동네 사람 뿐만 아니라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어요. 가로등을 설치한 사람만 이용하게 할 수는 없지요.

가로등이 없는 어두컴컴한 골목길이 있다고 생각해 봐요. 이때 사람들은 가로등을 설치하려 할까요? 다른 사람이 세워놓으면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데 누가 설치하겠어요. "누군가 설치하겠지" 하며 기다릴 겁니다.

이렇게 가로등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시장에서는 공급될 수 없어요. 하지만 가로등은 밤길에 꼭 필요합니다.

탱크와 비행기를 만들어 나라를 지키거나(국방), 집에 들어온 도둑을 잡아 넣는 일(치안)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일들은 시장에서 돈을 주고 누굴 고용해서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정부는 시장이 할 수 없는 이런 일을 대신 해 줍니다.

정부가 이런 일을 하기 위해 돈을 쓰고 또 여기에 필요한 돈을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거둬들이는 것을 '재정(財政)' 이라고 해요.

이때 나라에서 쓴 돈과 세금으로 거둔 돈이 같으면 재정균형이라고 하지요. 정부가 거둔 세금보다 더 많이 썼을 때는 '재정적자' , 그 반대의 경우에는 '재정흑자' 라고 하고요. 재정적자가 쌓여 있는 것을 '나라 빚(국가채무)' 이라고 합니다.

정부가 나라 빚이 크게 늘 정도로 돈을 많이 쓰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쌀집을 하는 영이네와 벽돌장사를 하는 철이네가 있다고 생각해 봐요. 경기가 안좋아 벽돌을 사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철이네는 매우 어렵게 살 겁니다.

이때 정부가 돈을 빌려와 공장을 짓는다고 생각해봐요. 철이네는 벽돌을 팔아 돈을 벌 수 있겠지요. 또 주변에 일자리가 없던 포크레인 기사들도 일자리를 찾을 겁니다.

돈이 없던 사람들이 돈을 벌면 여러가지 상품도 살 테니 공장도 더 잘 돌아갈 거고요. 정부가 빚을 내 돈을 푸니 일자리도 생기고, 경기도 좋아지게 되는 것이지요. 정부는 나라 빚이 3년만에 두 배로 는 것도 바로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런 일만 있을까요?

제 아무리 정부라도 자기 주머니에 없는 돈을 쓰려면 돈을 빌려와야 해요. 한국은행 또는 외국에서 돈을 꿔 오거나 "원금 얼마를 이자 얼마에 빌리겠다" 는 차용증(국채)을 사람들에게 준 뒤 돈을 구해야 하지요.

한국은행에서 돈을 빌려온다면 그만큼의 돈을 더 찍어내야 한다는 얘기지요. 시장에 1백원짜리 빵 10개밖에 없다고 생각해 봐요. 그런데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돈이 두 배로 늘어나면 어떻게 할까요. 빵을 더 먹고 싶은 사람들은 2백원 주고라도 사려 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물가는 자연스레 오르게 되는 것이지요. 국채를 발행하면 이자율도 올라갑니다.

얼마 전까지 1백원짜리 국채는 1년 뒤 이자 10원만 주면 됐었다고 하죠. 여기에 정부가 1백원짜리 국채를 1만장이나 발행했다고 쳐요. 많은 사람들은 "이자를 더 많이 주지 않으면 그 국채를 안 사겠다" 고 말할 겁니다.

사려는 사람은 일정한데 국채는 크게 늘었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자는 오르게 되고 은행돈을 빌려 투자하려는 기업들은 돈을 빌리기 어렵게 될 거예요. 이렇게 정부의 재정적자가 계속되면 경기가 좀 살아날지 몰라도 물가와 이자율이 올라가는 등 경제가 크게 불안해지지요.

이런 재정적자로 나라 빚이 늘어나는 데엔 보다 본질적인 뜻이 담겨있어요. 나라 빚이 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 자식들의 부담으로 돈을 쓰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빠가 돈을 흥청망청 쓰거나 장사하다가 망해 빚진 돈을 자식에게 갚으라고 하는 격이지요.

이때 자식들의 기분이 어떨까요?

국채와 이자를 갚아야 할 때가 다가오면 자식(미래의 납세자)들은 어떻게 하겠어요. 원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세금을 더 내거나, 정부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올리면서 정부지출도 줄여야 할 겁니다. 아니면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더 빌려야 할 겁니다.

이렇게 큰 빚을 자식에게 물려주면 그들의 생활수준은 낮아질 수밖에 없겠죠. 올해 1인당 나라 빚이 2백75만원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오늘 태어난 갓난아이는 세상에 나오면서 벌써 2백75만원이나 빚진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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