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대전은 눈물에 젖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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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오늘은 이기려는 것보다 우리가 살려고 뛰었습니다.”

 경기 후 공식 인터뷰장에 들어선 대전 골키퍼 최은성은 한마디를 채 마치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승부조작에 연루된 구단 선수로서의 비애감이 얼마나 심했는지 느껴졌다. 겨우 감정을 추스른 최은성은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켜 선수단을 대표해 팬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대전은 최근 프로축구 승부조작에 연루돼 선수 8명이 검찰에 소환되는 내홍을 겪었다. 4명은 구속됐고 4명은 조사를 받은 뒤 구단에 복귀했다. 수사가 전면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구단은 폭격을 맞은 듯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29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12라운드 전북과의 홈 경기에서는 일말의 분위기 반전이라도 꾀해 보려는 대전의 눈물겨운 노력이 엿보였다.

 왕선재 대전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요 며칠 정말 괴로웠다. 오늘 경기장에서도 어떤 표정으로 앉아 있어야 할지 몰라 가면이나 선글라스를 쓰고 싶은 심정”이라며 “선수들에게 말보다는 경기장에서 보여 주라고 주문했다”고 했다. 구단 측은 관중석 북측에 ‘대전 시민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선수들은 섭씨 30도를 넘어서는 찜통 더위에서도 사력을 다해 뛰었다. 전반 17분 황진산은 선제골을 터트리자 유니폼 안에서 흰 천을 꺼내 펼쳤다. ‘신뢰로 거듭나겠습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10분 뒤 이동국에게 일격을 당했지만 다시 전반 37분 박성호가 골을 터트리며 전북에 2-1로 앞서나갔다.

 대전은 후반에도 전북의 파상공세를 온 몸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체력을 너무 빨리 소진했다. 선수들의 움직임은 둔해졌고 공은 대전 골문에서 맴돌았다. 결국 대전은 후반 38분 이동국에게 동점골을 내줬고 경기 종료 직전인 후반 45분 이승현에게 역전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대전 선수들은 그대로 경기장에 드러누웠다.

 왕 감독은 “어느 때보다 투지 있게 싸워줬다. 전반에 젊은 선수들이 너무 많이 뛰는 바람에 후반 체력 안배에 실패했다. 졌지만 선수들에게는 고맙다”고 했다. 어렵게 인터뷰를 이어가는 왕 감독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다.

대전=오명철 기자

◆29일 전적

▶전북 3-2 대전 ▶인천 2-1 수원

▶성남 2-0 서울 ▶경남 1-1 제주

◆28일 전적

▶포항 2-2 대구 ▶울산 1-0 전남

▶상주 0-0 강원 ▶부산 1-1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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