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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건물과 SN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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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 김인숙씨. 주로 현대의 거대한 유리 건축물을 찍는다. ‘토요일 밤’으로 이름을 얻은 후, 뉴욕 타임스가 제작 의뢰한 ‘슈투트가르트 미술관’과 ‘발터크놀’을 선보였다. 현재 건축시장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유리 건물 프로젝트다.

 ‘토요일 밤’은 독일 뒤셀도로프의 호텔이 배경이다. 유리창이 크게 난 호텔 전경에, 66개의 방마다 10년간 독일 신문에 난 사건들을 연출해 찍어 합성했다. 방 안의 사람들은 목매달아 자살하거나 칼로 상대를 찌르려 한다. 유리창으로 훔쳐본 현대인의 외로운 초상, ‘윈도 시네마’다.

 뉴욕 타임스가 제작 의뢰한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은 미술관 안 관람객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발터크놀’은 공장·사무실·회의실 등 노동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의 정치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사진의 핵심은 유리 건축물이 드러내는 이중성이다. 스스로도 “심리적 매체로서의 유리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유리가 결코 안전하고 견고한 매체가 아님에도 지금 가장 사랑받는 건축소재인 것은, 현대인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안전을 위해 집 안에 몇 개씩 잠금장치를 설치하지만 한편으론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 건물을 좋아한다. 유리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아우성과 타인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해소할 수 있는, 이율배반적 소재다.”

 사실 건축에서 유리 소재는 작업장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 감독을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다. 소수가 다수를 감시할 수 있는 원형감옥과도 같은 ‘파놉티콘’ 구조물로 적합했다는 것이다. 현대의 유리 건축물들은 그런 점에서, 스스로 파놉티콘 안에 갇혀 사생활을 노출하는 현대인의 모순적 심리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김인숙의 사진 또한 “공·사의 경계가 무너지고 때로는 전도되는 삶. 그에 투영된 현대인의 소외와 공포를 잘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낯설지 않다. 당장 최근 트위터에 사생활을 공개했다가 ‘댓글 테러’ 끝에 자살한 한 여성 스포츠 캐스터가 떠오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절대 해선 안 되는 행동 목록(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높은 구체적인 개인정보 공개, 자녀 사진 올리기, 휴가계획 공개 등)이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SNS를 통한 공·사의 경계 허물기가 워낙 위력적인 데다, 그 위력을 절감하지 못한 채 저지르는 실수도 태반이다. 늘상 재잘거리며 말을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친교적 인간형’은 사회적 강박이 된 듯하다. 사람들은 빅 브라더의 위험성을 익히 알면서도 자신의 정보와 경험, 지식과 사생활을 SNS라는 거대한 재단에 무상으로 바치며, 궁극의 빅 브라더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제 자신에게 무서운 덫이 될지 모르는 SNS에 포박된 현대인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 건물 안에 살아가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운명이 아닐까. SNS와 유리 건축물은 그런 점에서 묘하게 닮아 있는, 이 시대의 초상이다.

 참고로, 김인숙의 사진은 7월 10일까지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는 ‘스페이스 스터디’전에서 볼 수 있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