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도 분위기도 맞춤형, 메뉴판 아예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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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호 03면

세계적인 레스토랑 가이드북 자갓서베이 한국판에서 2년 연속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이탈리안 레스토랑 ‘리스토란테 에오’. 90% 이상 비즈니스 접대를 위한 단골손님 위주로 운영되는 이곳에는 메뉴판 자체가 없다. “단골 고객이 대부분이라 서로 잘 알기 때문에 맞춤이 어렵지 않습니다. 외국 출장이 잦은 손님들이 그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구해와 요리를 해달라고 하실 때도 있고요. 음식뿐 아니라 분위기 면에서도 원하시는 컨셉트에 맞춤해 드립니다. 편안하고 쾌활하게 해드릴 수도, 간섭을 극소화할 수도 있죠.”

서울 청담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리스토란테 에오’의 어윤권 셰프

밀라노 포시즌호텔 부주방장 등 이탈리아에서 7년 동안의 경력을 쌓은 어윤권(41) 셰프는 이탈리안의 열정적이고 자연스러운 식문화 정서를 국내에 제대로 전하는 게 목표다. 피자나 파스타 같은 대중음식 위주로 소개되어온 풍토가 아쉬웠다는 어 셰프는 이탈리안 파인 다이닝의 면모를 예술 수준의 기술로 펼쳐 보임으로써 고객에게 그 가치를 전달하고자 한다.

“프렌치 요리는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정제되고 치밀한 완성도를 추구하는 데 비해 이탈리안은 창의력과 디자인 감각으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죠. 재료 손질부터 테크닉에 있어 단 한 번의 흐트러짐도 용납지 않는 카리스마 넘치는 요리이기도 하고요.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극상위 수준으로 갈수록 이탈리안의 포지션이 높아지듯 파인 다이닝에서도 반드시 프렌치가 우위라고 볼 수 없죠. 사실 정말 상위의 ‘기술자’들은 장르에 따른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그는 요리의 과정을 엔지니어링에 비유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테크닉을 추구한다. 고객이 시간과 감성과 비용을 투자한 가치를 고려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흐트러짐도 용납지 않는, 명품을 만드는 장인 수준의 기술적 완성도를 선보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3만원짜리 와이셔츠를 열 벌 산다면 그중 서너 벌만 맞아도 대략 만족하지만 10만원짜리 와이셔츠를 세 벌 산다면 세 벌이 모두 맞아야 만족하는 것이 고객의 마음입니다. 요리도 마찬가집니다. 파인 다이닝을 찾는 고객이 추구하는 가치를 만족시키려면 디테일한 부분까지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합적 디자인이 들어간 디시라면 요리 하나에 100번의 손길이 들어가는데, 재료 손질부터 마지막 오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까지 완벽하게 숙련되지 않으면 고객이 먼저 아십니다. 이탈리안 키친에서는 칼질 테크닉도 한번에 가지 않으면 맛의 차이가 드러나고, 열가공도 재료가 가진 최상의 타이밍을 놓치면 상품가치를 잃게 됩니다. 카리스마를 뿜는 이탈리안 음식을 만들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테크닉을 숙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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