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정치인들의 착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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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호 35면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얼마 전 미국 뉴욕에서 호텔 여종업원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구치소에 갇혀 곤욕을 치른 끝에 무려 60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이 사건 바로 전까지도 그는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렸다. 프랑스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이기도 했다. 정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기까지 불과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때 잘나가다가 성추문으로 공든 탑을 무너뜨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하원에서 탄핵까지 당했던 것도 인턴 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이었다. 게리 하트, 존 에드워즈 등 미국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도 성추문에 휩쓸려 정치 생명을 접어야 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역시 성추문에 총리직이 위태롭다. 자서전 출판으로 또 한 차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 파문의 당사자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들은 모두 권력의 정상 또는 그 근처까지 갔던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굉장히 잘나가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이런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저질렀을까? 왜 이런 사건들은 끊이지 않는 것일까? 해석과 설명이 분분하다. 권력의 속성 때문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기도 한다.

범죄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코딩(coding)’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탈과 범죄 행동에 대해 스스로 “그럴 수도 있다”는 합리화와 “적발될 리 없다”는 잘못된 계산이 강하게 코딩되어 행동으로 나타났다는 얘기다. 특히 ‘짜릿한’ 성공의 경험이 코딩을 강화해 끝내 실패라는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정치인들의 성추문이 첫 번째 행위에서 발각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부분 처음에는 호기심과 충동에 의해 저지른 행위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점점 대담해지고 일탈의 수위가 올라가다가 결국 터지게 된다.

권력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자신이 원하고 요구하면 뭐든지 얻을 수 있다는 착각과 함께 은밀하게 벌어지는 것이라 설마 밝혀지겠느냐는 안이한 생각이 성적 일탈을 부추긴다. ‘죄의식’이 사라지고 충동과 모험심만 커지는 것이다. 코딩에 의한 낮은 죄의식과 높은 모험심이 결합하면 이러한 일탈과 범죄 행위는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대처하는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가 코딩 때문이다. 살아온 성장 배경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코딩이 다르게 이뤄지는 것이다. 부적절한 관계나 유혹에 대해 강하게 저항하는 경우와 쉽게 넘어가는 경우의 차이가 여기서 발생한다. 역경을 딛고 크게 성공한 정치인일수록 무모하리만큼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경우가 많다. 몸을 사리기보다는 일단 저질러놓고 본다. 벌어진 사태를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이끌고 갈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탈과 범죄는 다르다. 사건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상처만 남는다. 치명적이냐 가벼운 상처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정치에 있어서 무모한 도전은 정치인으로서의 성공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무모한 일탈은 파멸의 나락으로 이끌게 된다.

너무나도 하찮은 것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거는 무모한 행위는 이처럼 잘못된 코딩 탓이 크다. 짜릿한 경험은 빨리, 그리고 강하게 코딩된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약 등 각종 중독자들이 중독의 심각성을 몰라 당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인일수록 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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