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Novel] 대장경 천년 특별기획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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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산별곡 ④

일러스트=이용규

득점한 청군 공격수가 당당하게 말머리를 돌려 차일 쪽으로 향한다. 뜻밖에도 계집같이 곱고 희멀건 귀공자다. 아직 소년의 풍모가 완연하다. 군중들이 연호한다. 차일 안에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최이가 팔을 들고 일어서며 소년을 맞이하려다가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만다. 미소년에게 넋이 빠져 있던 가냘픈 기녀들은 최이의 우람한 팔을 잡고 부축하는 시늉만 한다. 말 위에서 몸을 기울이고 길게 손을 뻗어 최이의 손을 스치고 가려 했던 소년이 휘청거린다. 낙마하려는 찰나, 소년은 달리는 말 위에서 안장을 잡고 현란한 몸놀림으로 물구나무를 서 보인다. 기막힌 마상무예다.

 “와-!”

 군중이 함성을 내지른다. 돌장승 같은 홍군 공격수 하나가 최이 앞으로 다가갔다. 소년의 아버지 최항(崔沆)이다. 그가 힘줄 뻗친 굵은 팔뚝을 치켜들고서 ‘천세(千歲)’를 외치자 차일 안에서 일제히 천세 구호가 울려 퍼진다. 천세는 왕을 위한 구호였다. 파안대소하던 최이가 손을 들어 구호를 잠재운다. 최항은 최이가 기생 서련방과 관계하여 얻은 천출이다. 그의 본명은 만전(萬全)이었는데 형 만종(萬宗)과 함께 일찌감치 송광사로 강제 출가했다. 만전은 얼마 전까지도 경상도 산청 단속사, 전라도 화순 쌍봉사에서 개망나니 중노릇을 하다가 환속 후 이름을 최항으로 바꿨다. 그는 절집에서 무뢰배 승려들을 모아 공공연히 고리대금업을 하고 계집질과 분탕질을 일삼았다. 승려 신분으로 남의 집 종과 사통해 아들도 낳았다. 방금 득점한 미소년이 바로 그렇게 얻은 아들 최의(崔<7AE9>)다.

 “이건 궁궐 바로 코앞에서 숫제 시위하는 거네요. ‘나는 병들었다만 내 아들과 손자가 이렇게 끌날 같다. 허튼 수작 마라’고요.”

 그때 말없이 한발 앞서가던 스승이 최이가 앉아있는 차일을 향해 머리를 숙여 보였다. 최이와 내 눈길도 마주쳤다. 뜨끔했다. 피해갈 수 없는 자리였다. 나는 스승의 그림자에 숨어서 묻어가는 것처럼 기신기신 뒤따랐다. 잠시 소강상태에 있는 격구장에 물이 뿌려졌다. 치닫는 말발굽에 마른 먼지가 풀풀 일어나기 때문이다.

 무장한 병사들이 에워싼 차일 뒤에서 말을 내렸다. 최이의 사병들은 검색 절차 없이 길을 터줬다. 그만큼 세상에 널리 알려진 스승이었다. 술과 고기가 그득그득 넘치는 주안상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우락부락한 무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영공, 빈도 문안 드리오.”

 스승은 당신보다 몇 살 아래인 최이에게 정중히 합장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나도 머리를 숙였다. 그때 기녀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꽃잎 흩날리는 봄바람에 휘감겨온 진한 분내 탓이었을까. 고개를 드는데 미세한 현기증이 일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는데 기녀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망측하다. 어쩌자고 이번 봄날에는 터무니없이 수상쩍은 일들만 잇달아 벌어지는 것인가.

 “어서 오시오, 도승통.”

 고개를 뒤로 젖힌 최이가 스승과 나를 번갈아 훑었다. 그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몽니를 부렸던 나의 백부를 떠올렸던 걸까. 그는 나를 무시하는 눈치였다. 이규보 상국만 해도 적당히 그의 비위를 맞춰줘 가면서 권력을 즐겼었지만 내 백부는 달랐다.

 “장서각에서 찾아볼 자료가 있어 오랜만에 성안에 들어왔는데 영공을 뵙는군요.”

 “수기 스님, 쉬엄쉬엄 하시오. 과로는 병을 부르거든.”

 “이제 막바지올시다.”

 “날 봐요. 평생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남은 건 이렇게 병든 몸뚱이뿐이잖소.”

 최이는 곰 발바닥같이 두툼한 손바닥을 펴 보였다. 혈색이 푸르죽죽하여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그간 무수한 피를 묻힌 저승사자의 손이었다. 기녀들이 양쪽에서 그 손을 세발낙지처럼 휘감아댔다. 이 늙은이가 말하는 격무란 결국 탐욕이다. 그가 악착보살같이 매달려 온 권력욕, 식욕, 색욕을 격무라고 미화하고 있었다.

 “그럼 빈도들은 이만.”

 “아주 먼 길을 다녀오실 모양인데 곡차나 한 사발씩 하고 가오.”

 집정으로서의 직감일까. 스승이 장서각 가는 길이라고 일러줬는데도 최이는 이쪽 내막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처럼 넘겨짚었다.

 그가 옆자리를 권했다. 기녀가 종종걸음으로 의자 하나를 끌어다 붙였다. 스승은 마지못해 자리에 앉으며 합장해 보였다. 나도 바깥쪽 자리에 엉거주춤 앉았다.

 “내 술 아무나 못 얻어먹거든. 허허허허.”

 죽순 모양의 상감청자 주전자를 들어 스승의 잔을 채운 최이는 내 잔 따윈 쳐다보지도 않고서 꿩고기 산적과 송어 찜을 가리켰다. 한복판에 숯불화로 장치가 달린 놋그릇들이었다. 시중들던 기녀가 그것들을 우리 탁자로 디밀었다. 술잔을 입에 댔다 뗀 스승은 찹쌀전병 하나를 집어서 내게 건네주었다.

 “내 앞에서야 가릴 게 뭐 있겠소. 쭈욱 들이켜고 꿩고기 산적 하나 뜯어보시구려.”

 너희 중놈들 우리 안 보는 데서는 별짓 다한다는 거 빤히 알고 있다는 말투였다. 말세를 당하여 승려들이 갖은 권세를 부리고 호사를 누린다 해서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세상에는 누가 보건 보지 않건 올곧게 정법을 지키고 정도를 걷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어지러운 시대에 나라가 망하지 않고 애면글면 버텨내는 저력은 그들에게서 나온다.

 “영공, 일이 급해서 그만 가보리다.”

 나는 스승을 따라 일어서며 합장해 보였다. 이건 처음부터 최씨 삼대를 위한 시합으로 누가 이겨도 그들의 잔치일 뿐이다. 스승과 나는 서둘러 차일을 벗어났다.

 “언제 선원사와 우리 식구 대항 시합 한번 하십시다!”

 등 뒤로 가래 끓는 탁한 음성이 울렸다. 상무정신을 기른답시고 매양 공치기 놀이에 여념이 없는 그였다. 그렇게 기른 상무정신은 정작 나라를 침략한 적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했다. 상무정신은 오로지 나라님과 백성을 제압하는 데만 쓰였다. 개경에서는 권력을 유지하느라 사람을 사냥했고, 강화도로 천도해서는 견자산 기슭에 궁궐보다 더 넓은 저택을 짓고 십 리나 되는 원림을 꾸미느라 숱한 사람들을 바닷물에 수장시켰다. 바다 건너 개경을 넘나들며 목재를 구해 왔기 때문이다. 굳이 엄동설한에 백여 리 밖 안양의 잣나무 관상수를 캐 집 안에 옮겨 심었다. 부역꾼이 얼어 죽었다. 한술 더 떠 해마다 겨울철만 되면 서산 석빙고에 얼음을 채워 넣었다. 습기 많은 강화도의 여름에 빙수를 즐기기 위함이었다.

 “웩!”

 격구장을 벗어나자마자 나는 그만 토악질을 하고 말았다.

 “고작 하나 얻어먹은 전병이 체한 게냐?”

 스승은 끌끌 혀를 찼다.

 “저들의 폭정과 방탕은 세상의 조롱거립니다.”

 나는 소매로 입을 닦았다. 시큼한 냄새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조롱? 숨어서 빈정대는 자들이 하는 건 조롱이 아니라 변죽이다. 당분간 저들 세상은 끄떡없겠지.”

 “가증스럽습니다.”

 “그런 말 마라. 가증스러운 건 저들이 아니라 우리일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태 저들이 세운 절집과 대장도감에서 배불리 먹고 두 다리 쭉 펴고서 지내오지 않았느냐. 역사는 권력을 잡고 누리는 자들이 자기 취향대로 쓰는 것임을 몰라서 그러느냐.”

 스승의 그 말씀은 잔뜩 불만을 품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온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부끄러워졌다. 세상에 도가 행해지지 못하고 뒤틀린 힘들이 작동하는 세월에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건 비겁한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최 집정도 불행한 중생. 자식보다 더 아끼던 사위를 죽이고 딸과는 원수지간이 되더니 급기야 병까지 깊어졌구나. 검푸른 안색으로 보아 간에 치명적인 질병이 뻗쳤다.”

 우리는 북산 아래 터 잡은 궁궐 정문 앞에 다다랐다. 등 뒤 격구장의 함성소리가 고스란히 올라왔다. 말에서 내리자 대기하고 있던 구종배가 달려들어 말고삐를 낚아챘다.

 “수기 도승통 아니시오?”

 궁궐 문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이는 서경(평양) 동북쪽 자주성 전투의 영웅 최춘명(崔椿命)이었다. 이제 추밀원 부사가 되어 있는 그는 몽골의 제1차 침입 때 고려인의 기상을 보여준 무장이었다. 겹겹이 포위된 성을 철통같이 지켜내 몽골 장수들을 질리게 만들었다. 여몽 간에 화의가 성립되고 몽골군 총사령관 살리타이의 압력을 받은 조정으로부터 투항을 종용받았으나 끝까지 거부했다. 몽골군이 물러가고 최이가 항명죄로 처형하려 했으나 도리어 몽골군 다루가치의 변호로 처형을 면했다. 최춘명은 고려의 자존심이었다.

 누에고치처럼 쪼글쪼글 늙었지만 최춘명을 보고 나니 아까부터 뒤틀리던 속이 개운했다. 스승과 나는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보고 섰다가 장서각 안으로 들어갔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교리가 빈약한 장서 목록을 내밀었다. 자욱이 먼지가 내린 서가에는 책이 삼분지 일도 채워져 있지 않았다. 황급히 천도하면서 그 많던 책들을 미처 챙겨오지 못했다.

 “예로부터 문헌지방(文獻之邦)으로 통하는 우리나라가 어찌 이 지경이 되었을꼬.”

 장서 목록을 훑어본 스승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더 볼 것도 없었다. 툭툭 손을 털고 장서각을 나서며 스승은 쓸쓸히 읊조렸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죽간과 방각본 등 귀중한 문헌들이 석 달 열흘간 불탔다고. 그때 상고 문헌과 고구려 역사서 『유기』가 사라진 건 참으로 애석하다. 사서(四書)를 집주(集注)한 송나라 주자(朱子)는 『맹자』 진심장구의 주석에서 중국 문헌에는 없는 내용이 외국본(外國本)에 있다고 했다. 『주자어류』에 보면 제자가 외국본에 대해 질문하자, 주자는 우연지라는 인물이 말한 고려본을 인용해 답변하고 있다. 이렇듯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곳곳에 우리 고려본이 인용되느니라.”

 스승의 자부심은 특유의 박식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더욱 크고 빛나 보였다. 하지만 이 판국에 옛날의 영화를 들먹여서 뭣 하겠는가. 장서각이 이 지경인데 나라에 인문정신이 빛날 까닭이 없고 국자감 유생들이 제대로 공부나 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와-. 와-. 타구! 타구! 이곳 장서각까지 격구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왕의 처소라고 다를 것 같지가 않았다.

 “바다를 건너자! 황성의 보문각(寶文閣)이 불탔다지만 혹시 아느냐.”

 우리는 바삐 조랑말을 몰아 승천보로 향했다. 포구에는 군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바랑에서 작은 은병 하나를 꺼낸 스승은 그걸 중장군에게 건넸다. 대장도감 총감독이자 도승통이라는 직위보다 그 은병 하나가 더 큰 효력이 있었다.

 “신변의 위험은 책임질 수 없어요. 몽골군 잔당보다 화적패들이 더 무섭답니다.”

 “염려 말게. 벽란도까지만 건네주면 알아서 돌아올 테니까.”

 나는 스승의 그 말씀을 믿었다. 그때까지도 스승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며 찾는 책이 뭔지 잘 몰랐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는 진실이 담긴 책이라면 이깟 위험이 대수인가. 우리 인간은 때로 신념이나 진실 찾기에 목숨을 걸기도 하는 존재다. 그 여정이 강가의 뗏목, 한밤중의 횃불같이 듬직한 이와 함께하는 것이라면 두려울 게 없다.

 북으로 가는 군선에 올라 바다 건너 황해도 땅을 바라보니 가슴이 뛰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나 어릴 때 떠나온 개경을 이제야 가보게 된다. 그 옛날 소년의 꿈속에 깃든 황도는 찬란했다. 그 찬란했던 황도는 지금 이 좁은 바다 너머 대륙에 내팽개쳐져 있다. 대륙과 섬 사이에 난 해협은 전혀 다른 두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이었다. 전쟁과 평화, 복속과 항전을 가르는. 그랬다. 그것은 물의 선이었다. 물의 선은 물의 벽이기도 했다. 바다는 물길이지만 동시에 험난한 장애물이기도 하니까. 적들은 바다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왕도 무신정권 세력도 대신들도 모두 그렇게 믿었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어 했다.

 나는 정말 바다가 무섭다. 물론 배를 몰 줄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적들의 점령지를 찾아가고 있다. 순간 나는 이 기나긴 전란이 우스꽝스러운 꼭두각시놀음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나는 몸서리가 쳐졌다. 벽란도가 다가올수록 그 두려움은 더 부풀려졌다. 나의 두려움은 몽골병이나 화적패의 출현이 아니라 칼날처럼 날이 서는 냉정한 분별력이었다.

글=김종록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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