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생수회사 CEO 반납하고 월급 120만원 숲 해설가로 제2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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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자연 속에서 제가 가진 능력을 살려 숲이 주는 이로움을 알리고 있습니다.”

 대기업 임원을 지내고 중견기업체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하다 숲 해설가로 변신한 김용환(59·사진)씨의 말이다. 김씨의 이력은 화려하다. 생수업체인 (주)스파클 대표직을 2009년까지 8년간 역임했다. 이전에는 CJ 제일제당 임원(상무)으로 재직했다. 스파클에서 영업부문 대표를 맡으며 90억원이던 연간 매출액을 150억원으로 키웠다. 원하면 얼마든 오래 근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좋아하는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은 소망을 실천하고 싶었다.

 2009년 7월. 젊다면 젊은 57세에 미련없이 회사를 나왔다. 자연과 호흡하고 살며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경기도 포천시 국립수목원을 아내(53)와 찾았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젊은이 못지 않은 정열로 관람객을 안내하는 ‘숲 해설가’를 만나 감명을 받았다.

 김씨는 그 길로 숲 해설가로의 변신을 마음 먹었다. 사회에 나와서 활용하지 못 했던 대학 전공을 살리기에도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서울대 농대에서 농업교육학을 전공했다. 이후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간 사단법인 숲연구소에서 마련한 숲 해설가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고 숲 해설가 자격을 갖췄다. 곧바로 국립수목원 숲해설가 공모에 응시해 당당히 합격, 올 1월 초부터 숲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국립수목원을 찾는 관람객들을 상대로 산림박물관과 전문수목원 등 광릉 숲 구석구석을 안내하고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뒤늦게 시작한 일이지만 열심이다. 출근시간보다 1시간 먼저 나와 광릉숲을 돌며 꽃과 나무의 변화를 매일 살핀다.

 김씨는 “기업체 CEO에서 숲 해설가로 변신하는 데 주위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고 말했다.

 월급은 실수령액 기준 120만원 정도. 기업체 CEO 월급에 비교할 수 없이 적은, 교통비와 식비 수준이다.

 “이 일은 돈벌이 수단이 아닌 자원봉사 의미에서 한다”는 그는 “숲 해설가로 거듭난 후 몸과 정신 건강이 모두 좋아지는 걸 체감하며 지낸다”고 말했다.

글·사진=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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