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서울시 충성파 공무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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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심상복
논설위원

서울시에 충성스러운 직원이 늘고 있다고 한다. 직장인에게 충성심은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다. 일과 조직을 위해 열정을 쏟는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충성이 사람을 향하면 곤란하다. 아첨으로 변질되기 쉽기 때문이다. 인구 1000만 명의 서울시정은 매우 복잡하다. 오세훈 시장은 그래서 실무를 담당 국장들에게 주로 맡긴다고 한다. 자신은 최고경영자(CEO)답게 정책의 큰 줄기만 챙긴다. 큰 조직의 리더로서 바람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폐단도 나타나고 있다. 재량권을 가진 국장들이 시장의 관심사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업무뿐 아니라 개인 취향까지 세심하게 신경쓰고 있다고 한다.

 지난 4월 4일 서울시 식목행사 풍경을 보자. 오전 10시30분 성산동 월드컵공원에 오 시장이 나타났다. 등산화는 물론 각반에 무릎보호대까지 한 완벽한 복장이었다. 현장의 중앙일보 기자는 전투경찰 시위진압복 같았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담당 국장이 하루 전 약 2000만원을 들여서 만든 임시 철제 계단을 밟으며 행사장으로 올라갔다. 그러곤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그 계단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때 부하 직원이 달려와 무릎을 꿇고 시장의 각반과 무릎보호대를 풀어주었다. 오 시장은 이어 다른 직원이 가져온 흰 장갑으로 등산복에 묻은 먼지를 털고 관용차에 올랐다. 행사장에 도착한 지 15분 만이었다.

 이날 행사는 이미 구설에 올라 있었다. 시장님이 언덕길을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100여m의 철제 계단을 만든 것을 본사 탐사팀이 세금낭비 케이스로 보도했던 것이다. 묘목 구입비와 거의 같은 돈을 한 번 쓰고 치울 계단 만드는 데 썼던 것이다. 보도가 나가자 담당 국장은 철제 계단을 재활용해 다른 곳에도 쓸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계단은 지금도 거기 그대로 있다. 철거하는 데도 돈이 들기 때문이다.

 국장이 시장님 발에 흙이 묻지 않도록 계단을 급조하고, 직원이 무릎보호대를 벗겨주는 장면은 아무래도 볼썽사납다. 엊그제 신문에 『일성록(日省錄)』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는 뉴스가 실렸다. 일성록은 조선 후기 왕들이 일상과 국정에 관한 생각을 매일 일기체로 정리한 책이다. 여기에 정조가 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제 눈 치우는 일로 백성들에게 폐를 끼칠까 염려되어 하교한 바 있는데, 오늘 지나는 길에 눈이 하나도 없는 걸 보니 폐단이 적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행차를 앞두고 도로의 눈을 깨끗이 치우느라 백성들을 괴롭힌 관원들을 나무란 것이다.

 서울시 사람들은 왜 충성파가 되는 것일까. 오 시장이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재배적이다. 나이가 젊어서(50세) 차기가 아니면 차차기도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선행학습도 했다. 전임 이명박 시장이 대통령이 된 뒤 선배들이 권력의 한 축을 차지하는 걸 똑똑히 본 것이다. 아랫사람이 과잉 충성을 하면 그저 즐길 게 아니라 정조처럼 나무라야 진정한 지도자다. 세금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분명하게 일러줘야 한다. 그냥 두면 그런 직원들은 더욱 늘어나고 서울시 행정엔 물이 새는 일이 잦을 것이다.

심상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