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다큐 - 〈북한의 버려진 아이들, 꽃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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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흔적이 역력해 그것만으로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제3회 서울 다큐멘터리영상제'에 참석했던 일본영화학교 교장이며 저명한 영화평론가인 사토 다다오(佐藤忠男. 69)씨가 〈북한의 버려진 아이들, 꽃제비〉를 평한 말이다.

1998년 11월 00방송사에서 한편의 다큐가 방영된 후 일어난 사회적 반향은 예전의 그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북한의 버려진 아이들, 꽃제비〉를 통해서 드러난 북한의 식량난은 하루 몇 만 톤의 음식쓰레기를 배출하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가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북한 주민을 돕자는 구호 운동이 활발해졌고, 여러 신문사설에서도 꽃제비에 관한 글이 실리며 북한의 주민을 돕자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여전히 북한의 어린 꽃제비들의 실상을 쫓는 다큐가 만들어지고 있다.

98년 9월 새벽 탈북 기아 난민 청년 안철은 목숨을 걸고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 그의 가방 안에는 소형 비디오 카메라가 들어있었다. 그의 목적은 북한의 비참한 민중들의 생활을 세계에 폭로하기 위해 재잠입해 비밀촬영을 하는 것. 북한 사회의 식량난을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북한 민주화의 필요성을 전 세계에 알리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카메라는 북한의 중부 지방에 있는 두 도시의 장마당을 몰래 촬영하기 시작한다.

95년부터 들이닥친 식량난은 북한 여러 지역에 식량 등을 사고 파는 암시장인 '장마당'을 활성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장마당에서 안철이 보여주는 내용은 충격적이다. 카메라는 10월 중순에도 반소매 차림으로 앙상한 뼈를 드러낸채 맨발로 음식 찌꺼기를 주워먹는 꽃제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진흙바닥에 떨어진 음식 찌꺼기를 주워먹고, 혹시라도 먹을 것이 있나 싶어 시궁창을 헤집는 어린 아이들의 뒤를 쫓는다.

안철은 카메라를 숨긴채 촬영을 해야했기에 카메라는 초점도 맞지 않으며, 영상미라곤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조금씩 보이는 화면과 소리로 촬영의 현장 상황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다큐가 영화의 한 장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촬영이다. 하지만 〈북한의 버려진 아이들, 꽃제비〉를 보는 사람들에겐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목숨을 건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작년 한국에서 개최되어 커다란 감흥을 주었던 '퓰리처 사진대전'에서 보듯이 진실을 담은 사진 한 장은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목숨을 건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한편의 다큐 〈북한의 버려진 아이들, 꽃제비〉가 한국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데 성공한 것처럼, 앞으로도 무수한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현재 북한의 7세 미만의 어린이들 가운데 62%가 발육부전 상태이며 16%가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 사회에 대한 범정부적이고, 민간적인 교류 지원이 좀더 활성화되기를 기원하며 이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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