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낙하산 내려보내면서 공기업 선진화하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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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철
경제부문 기자

지난 20일 ‘막 오른 공기업 인사전쟁’ 보도가 나간 뒤 한 정치인 출신 공기업 대표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지나가는 길에 걷어차는 식으로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는 항의였다. 그는 “지난 두 차례 평가에서 우수 기관장, 양호 기관장 평가를 받았다”며 “사장이 앞장서서 KTX 일반실 탑승, 출장비 반납, 항공기 이코노미 탑승 등 솔선수범하고 직원들을 섬기는 경영으로 강성 노조를 설득해가며 공사를 변화시켰다”고 강조했다. 경영 능력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정치인 출신 ‘낙하산’이라고 도매금으로 비판받는 게 몹시 억울하다는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낙하산이라고 다 못하라는 법은 없다. 능력 있는 정치인이나 퇴임 공무원도 법에 정해진 투명한 절차를 통해 선출되면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까 문제라는 것이다. 현재 공공기관 임원 선임 절차는 훌륭하다. 공개모집 절차와 임원추천위 추천,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공공기관 운영위 심의까지 여러 단계의 거름막을 쳤다. 그러나 결국 임명된 사람은 그 기관과 전혀 걸맞지 않은 정치인들이나 퇴임 관료들이었다. 미리 임명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나 기관에 손을 쓰기 때문이다. ‘눈치 없이’ 진짜 실력만 보고 추천했다가 “적임자가 없으니 다시 추천하라”고 퇴짜 맞는 경우도 여럿이다.

중앙일보 5월 20일자 1면.

 중앙일보의 기사는 이런 상황을 통계로 확인해준 것이다. 정권 초기에는 챙겨야 할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그때 임명된 사람들의 임기가 끝나고 새로 임명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원한 한 공기업 부장급 직원은 “이렇게 내려온 낙하산이 그나마 실력이 있으면 다행이고, 그것도 아니면 회사 망가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라며 푸념했다.

 현 정부가 추진한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국민들은 환호했다. 비대한 조직과 그에 따른 비효율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니 직원들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낙하산들이 여전히, 대거 투하되고 있다. 고통을 감내한 직원들에게 낙하산들은 뭐라 얘기할지 궁금하다. 윗물은 휘저어 흙탕물로 만들어놓고 “그래도 너희 아랫물은 맑아야 한다”는 억지는 그만 부렸으면 좋겠다.

최현철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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