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집짓기가 놀이인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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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처음부터 ‘건축공방 무(無)’를 취재할 의도는 아니었다. 예쁜 집 짓는 현장이라기에 집 구경이 하고 싶어 찾아갔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경기도 포천시 무림리 흙집. 잔디를 얹은 지붕이며 툇마루를 설치해 좌식과 입식의 장점을 고루 누리게 한 주방 등 과연 구석구석 감탄할 만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더 신기했던 건 집보다 집 짓는 사람들이었다. 고된 일을 하는 ‘인부’들의 표정이 마치 운동장에 풀어놓은 아이들 같았다. 서로 별명을 부르며 왁자지껄하며 한바탕 웃음이 터진 건 또 몇 번이었던가. 일터가 잔치마당 같은, 그 비밀이 더 궁금해졌다.

글=이지영 기자 ,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3인의 ‘가족’ … 노동이 즐겁다

사진은 어디서 찍을까. 주위를 둘러보던 ‘건축공방 무’ 식구들이 지붕 위로 올라갔다. 마무리 공사 중인 경기도 포천시 무림리 흙집엔 지붕에 잔디가 깔려있어 마치 언덕 위에 올라간 듯 운치가 있다. 뒷줄 왼쪽부터 이승래·김동영씨. 앞줄은 왼쪽부터 성화영씨, 이일우 소장, 김영부·정재연·박종진·김진호씨.


‘건축공방 무(이하 ‘무’)’는 설계·시공회사다. 홍익대 건축과를 졸업한 이일우(41) 소장이 2001년 만들었다. 처음엔 설계만 했다. 하지만 시공사와 마음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이 소장은 “집을 짓는 과정에서 이윤 추구를 앞세우는 시공사와 점점 관계가 나빠졌고 그 결과가 집에서도 드러났다”고 말했다. 관리자와 노동자가 분리돼 있는 건축현장 문화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제 일을 하는 사람이 일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일용직’대접을 받는 현실을 깨고 싶었던 것이다. 고민 끝에 2005년부터 시공도 함께하기로 했다.

‘무’에선 현장과 사무실이 분리돼 있지 않다. 설계를 맡은 건축사와 목수·미장이 등 모든 작업자가 함께 의논하고 결정한다. 공사 현장이 정해지면 인근에 숙소를 정하고 모두 합숙에 들어간다. 주 5일을 함께 지내고 주말에만 자유시간이다. 매일의 일과도 규칙적으로 진행된다. 오전 6시 기상, 운동과 식사를 마친 뒤 8시에 작업 시작이다. 오후 6시. 작업을 마치면 모두 숙소에 돌아와 씻고 저녁 식사를 한다. 그리고 오후 8시 회의를 시작한다. 하루의 작업을 복기하고, 문제 해결방안을 찾고, 건축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다. 벽 미장을 위한 흙 다짐 배합 비율을 결정하기 위해 여덟 개의 샘플을 만들어 놓고 강도 테스트를 했고, 창덕궁 여러 전각의 창호와 살문들을 문 제작의 참고자료로 삼았다. 회의와 공부는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자신의 전공과 특기가 뭐였든 모두가 현재 진행 중인 공사에 대해 전문가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말 그대로 ‘주경야독’. 자칫 버거울 법했다. 그 빡빡한 일과를 “재미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무’로 모여들었다. 현재 ‘무’의 직원은 모두 13명. 이들은 서로를 “식구”라고 부른다. 호칭도 이름이나 직책이 아닌 별명이다. 이 소장은 ‘일우쌤’, 독문학을 전공하고 건축이 알고 싶어 찾아온 김진호(38)씨는 ‘먹쇠’. 전직(前職)이 200개가 넘었다는 박종진(41)씨는 ‘이백’으로 불린다. 위계질서가 비집고 들어올 틈을 최대한 줄인 장치다.

흔히 설계사가 독점해 온 건축주와의 소통도 ‘무’에선 모든 작업자에게 확장됐다. 틈나는 대로 건축현장에 들러 작업을 돕고 회의에 참석하는 집주인. ‘무’의 ‘식구’들에게 건축주까지 가족이 된다. “여기 집주인은 애들 잘 키우려고 (대안학교가 가까운) 이곳에 집 짓는 거거든요. 그걸 돕는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거죠.”

‘둥이’로 통하는 막내 정재연(25)씨의 말이다.

 웃음으로 지은 집, 그 집에서 사는 행복

그동안 ‘무’에서 지은 집은 모두 여덟 채. 주재료는 흙과 나무다. 평당 건축비를 물었다. “건축주 예산에 맞춘다”는 게 ‘일우쌤’의 대답이다. 다른 시공사에 비해 비싸냐, 싸냐의 질문도 우문이었을까. “싸다고 볼 수도, 비싸다고 볼 수도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330㎡(약 100평) 대지에 건평 132㎡(약 40평)로 짓는 포천 흙집의 경우 건축비 예산은 2억원이다.

‘무’가 흙과 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들 재료가 자연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또 다루기가 쉬워 누구나 작업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혔다. 하지만 이 소장은 ‘생태’건축이나 ‘친환경’건축으로 분류되는 일은 경계했다. 세태에 맞춘 ‘유행어’라 생각해서다. 대신 “사람과 자연을 조화롭게 만드는 ‘좋은’ 건축을 지향한다”고 했다.

자연 소재를 활용하려는 노력은 건축현장 곳곳에서 드러났다. 아궁이까지 설치된 황토방 바닥은 아마인유를 바른 뒤 ‘콩댐(물에 불린 메주콩을 갈아 자루에 넣은 뒤 방바닥을 문지르는 것)’을 해 반질반질 윤을 내놨고, 부엌 흙벽엔 느릅나무 달인 물을 발라 마감을 했다. 이론적 근거도 탄탄하다. 설계와 현장 일을 함께하고 있는 김동영(29)씨는 콩댐의 원리에 대해 이렇게 푼다.

“콩에 들어 있는 지방 성분이 공기와 반응(산화)해 막을 형성하는 거예요. 콩댐은 콩만으로도 할 수 있고, 들기름을 섞어 부족한 불포화지방산을 보충해 사용하기도 하죠. 들기름을 사용하면 색이 짙어지고 냄새가 나는 대신 빨리 굳고 피막이 강해져요….”

‘무’는 앞으로도 건축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꿈을 꾼다. ‘무’만의 터전을 만드는 문제도 논의 중인 과제다. 주말밖에 가족을 만날 수 없는 ‘무’ 식구들에게,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터전이 필요하진 않을까.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자연을 닮은 공법 │ 방바닥 ‘콩댐’하는 법

준비물(10㎡(약 3평) 기준) 메주콩 1800mL(1되), 들기름 540mL(3홉), 천

작업 과정 ①메주콩을 24시간 동안 물에 불린다.(사진1) ②믹서로 곱게 간다. 갈 때 믹서가 뻑뻑해 돌아가지 않으면 물을 약간씩 넣는다. 어느 정도 갈리면 절구에 넣어 으깬다. ③잘게 부서진 콩과 들기름을 7대 3 비율로 섞는다. ④약 짜는 포대나 광목에 ③을 넣어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리면서 방바닥에 발라 준다.(사진2) ⑤1회 칠한 뒤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⑥2회, 3회, 원하는 만큼 반복해 칠한다. 여러 번 칠할수록 좋다. ⑦다 마른 뒤 마른걸레로 골고루 문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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