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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대장경 천년 특별기획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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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1. 청산별곡 ③

일러스트=이용규

 “마리아요?”

 나는 생소한 여인의 이름을 확인차 되물었다. 스승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골몰한 생각에 잠겨 있어서 내 물음은 뒷전이었다. 나는 스승의 말씀을 기다리며 다른 경판들을 살폈다. 나머지 경판들은 화엄경이나 금강경 변상도들이었다. 진리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난다. 변상도는 그걸 표현하고 있었다. 고려국 최고의 각수장이가 새긴 작품답게 그림들은 장엄하면서도 섬세했고 글씨는 미려했다. 맨 마지막 장이 또 이물스러웠다. 돌무덤 앞에 서 있는 사내의 그림이었다.

 “세존 부활 승천!”

 나는 세로글씨를 소리 내 읽었다.

 “그럼 이서라는 인물이 석가세존이라는 말씀인가요?”

 “….”

 스승의 침묵은 계속되었다. 본래 말수가 적은 스승이지만 지금의 침묵은 내 궁금증을 점점 더 커지게 만들었다.

 “말염이 마리아라면 이서는 어떤 이름의 음차일까요?”

 “이수로 발성되지만 글쎄….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구나. 너에게 불분명한 걸 말해줄 수는 없지 않겠느냐.”

 스승은 복잡한 생각이 담긴 눈길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눈길에서 십 년 전 돌아가신 백부의 모습을 떠올린 건 왜였을까. 나의 백부 유승단(兪升旦)은 졸가리가 빳빳한 문인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최씨 무인정권 세력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이규보 상국과는 동년이자 막역한 지음이었고 수기(守其) 스님을 키우다시피 했다. 그런 연줄로 스승 수기는 나를 대장도감 일에 끌어들여 측근으로 삼으셨다. 나도 그런 스승을 여느 큰스님을 경모하는 감정 이상으로 대해왔음은 물론이다.

 나는 김승이라는 당돌한 각수장이가 보내온 마지막 그림을 바라보면서 사람이 태어나서 반드시 한 번은 맞아야만 하는 속절없는 죽음과 그렇기 때문에 접을 수 없는 영생에의 꿈에 대해 생각했다. 종교는 대개 그런 꿈에 기대어 구원을 팔며 번성한다. 그리고 포기할 수 없는 기득권이 되면서 독단에 빠진다. 내가 알고 있는 석가세존은 사라쌍수 사이에서 오른쪽으로 누워 열반했다. 만 여든 살 때 식중독에 걸려 쇠잔해진 그는 북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편안히 눈을 감았다. 그의 유해는 다비되었고 몸에서 나온 영롱한 사리는 8부족에 나뉘어 사리탑에 모셔졌다. 물론 부활하지도 않았다. 성자라도 하나의 생명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한 번 죽으면 그뿐, 다시 살아날 수는 없었다. 부활하여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건 성자의 몸이 아니라 성자가 남긴 말씀들이다. 아니다. 엄격히 말해서 영원히 남는 말씀도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 대지는 물론 저 광대하고 유원한 우주까지도 언젠가는 소멸하게끔 돼 있다. 소멸은 또 다른 형태의 생성으로 이어지기도 하겠지만.

 “이서, 아니 이수라는 이가 석가세존이라는 건 억지입니다. 그가 죽었다 되살아나 하늘로 올라갔다는 건 사뭇 도교적이네요. 시해선(屍解仙) 말씀이죠.”

 나는 스승의 인가를 받으려는 듯 분명한 소론을 펼쳤다. 스승의 주름진 얼굴에 얼핏 엷은 미소가 떴다 사위었다.

 “시해선…. 재미있는 관점이로구나. 하지만 아직은 모든 게 오리무중이다. 문헌을 찾지 못했고 대식국이나 대진국에서 온 눈 밝은 상인에게 확인해 보지도 못했으니까 말이다. 이도 저도 어렵다면 개경의 다루가치에게 선을 대 물어볼 수도 있겠다만.”

 나는 내심 놀랐다. 스승도 모르는 게 있었다. 당신은 먼저 문헌을 뒤져볼 요량 같은데 이 전쟁통에 그런 게 남아있을까 싶다. 이곳 대장도감 안에는 그런 문헌이 없다. 벽란도를 통해 개경을 출입하던 대식국(大食國·아랍)이나 대진국(大秦國·로마) 상인을 만나는 것도 불가능하다. 몽골의 침입으로 화려했던 도시 개경은 불타 쑥대밭이 되어버렸고 번창했던 벽란도 항구는 거의 폐쇄되다시피 했다. 세곡선이 올라오는 이곳 강화도 선원사 인근 더리미나 갑곶에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오는 무모한 외국인 상선들이 더러 있긴 했지만 기약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다루가치에게 선을 대다니. 몽골군이 물러가면서 고려국 곳곳에 남겨둔 지방관이 다루가치였다. 애초에 72인이나 두었으나 고려인들에 의해 대다수가 제거되고 지금은 얼마 남지 않았다. 섬이나 깊은 산중으로 숨어들지 않고 몽골군의 점령지에서 버티고 살아가는 생민들과 다루가치는 불편한 동거를 해왔다. 그런 다루가치와의 접촉은 분명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스승에게 이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온 나라가 총력을 기울였던 대장경 판각 작업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각수장이가 올려 보낸 물건이라 해도 이 마당에 그런 모험을 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세상에 기이한 변설과 무지개 놀음 같은 허깨비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무리들은 넘쳐난다. 특히 이런 전쟁통에는 더 그렇다.

 “도대체 김승이라는 자는 왜 이 마당에 이런 엉뚱한 그림을 올려보낸 걸까요? 요즘 제가 교정보고 있는 『대장목록(大藏目錄)』만 새기면 대역사가 마무리되는데요.”

 눈을 감은 스승은 말없이 염주만 돌렸다. 무시해버리면 그만인데 그러기에는 석연치 않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랬다. 스승은 강렬한 뭔가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반투명한 옥 등잔에서 퍼져 나온 황촉 불이 쇠잔해져 가고 있었다. 나는 책상서랍에서 초 한 자루를 꺼내 불을 옮겨 세웠다. 죽어가던 불빛이 다시 살아나 방안을 훤하게 비췄다.

 나는 경판 외곽부 오른쪽 하단에 거칠게 음각한 김승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거스러미만 일 뿐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인쇄될 경전 판각 부분이 거꾸로 새겨진 것과 달리 외곽부의 각수장이나 시주한 이의 이름은 바르게 새겨져 있었다. 뚜렷한 그 이름을 매만지면서도 나는 정작 김승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그가 올려온 경판들은 새김이 정밀하고 미려할뿐더러 그 내용이 완벽해 온갖 찬사를 받아왔다는 것, 판각 장소가 남녘 땅이라는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의 공방이 있는 흔량매현은 전라도 바닷가와 접한 산중마을이었다. 백제 유민들이 끝까지 저항한 험준한 반도 지역으로 인근에 내소사가 있었다.

 “그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해인사 출신 승려지.”

 “그런데 왜 서해 바닷가 쪽에 공방을 만들었죠?”

 “바람 따라 물 따라 만행하는 스님이 많으니까 그건 어리석은 물음이다.”

 스승의 말씀이 옳았다. 운수납자가 중의 별칭이다. 절이 싫어지면 언제라도 떠나는 게 중들의 생리였다. 높은 직위가 있거나 큰 사찰 소임을 맡아서 가진 게 많은 중들은 그렇지 못하지만. 승선과에 급제해 알량한 승정(僧正) 벼슬을 지내는 나만 해도 마음대로 떠날 수가 없지 않는가.

 “그자를 보신 적은요?”

 “전혀. 해인사 강원에서 그와 한 철을 난 학인이 있다만 쉰 살쯤 되었을 거라는 것 외에는 다른 정보가 없다.”

 “그 많은 경판을 새겨 올린 자를 이렇게 모를 수가 있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 흔량매현 공방은 전주 계수관(界首官) 관할이 아니더냐.”

 그런 곳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장도감에서 나설 일이 없었다. 지방장관인 계수관이 도급인이었으므로 그의 책임이었다.

 “이 여덟 장의 경판은 계수관을 통해 올라왔을 리가 없겠지요.”

 “장사꾼의 배편에 올라왔더구나. 대장도감이 아닌 내 개인 앞으로.”

 나는 어이가 없어 스승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스승의 강렬한 눈빛을 의식해서 살짝 마주치고 다소곳이 눈길을 거뒀을 거였다. 스승은 두 손으로 연거푸 마른세수를 했다. 하얀 눈썹가로 물무늬 같은 주름살이 일렁거렸다. 마른세수를 마친 스승은 목을 뒤로 젖혔다 세웠다. 핼쑥한 얼굴에 피로한 기색이 가득했다.

 “좀 쉬셔야 할 텐데….”

 “허허허. 오늘 밤은 너랑 새우자는 뜻이로구나. 하지만 그만 자자. 내일은 필시 우리가 바다를 건널 일이 있을 테니. 넌 윗방 인보에게 건너가 잠시 눈을 붙여라.”

 “예? 바다요?”

 스승은 대답 대신 방바닥에 어지러이 널브러진 책들을 주섬주섬 거둬 꼭 한 사람이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같이 보내온 간찰 같은 건 없었나이까?”

 “없었다.”

 “그 사람 참 실없군요.”

 “넌 그래 보이느냐? 이렇게 우리의 밤잠을 빼앗고 있는걸.”

 스승은 벽장에서 이부자리를 꺼내 깔았다. 나는 목례를 하고 윗방으로 건너왔다. 자리에 누워 길래 생각을 달리다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등에 무거운 추 같은 게 달려서 밤새 나락으로 끌어내려지는 느낌이었다.

 “지밀 스님, 해가 중천입니다. 어서 공양하러 가시지요.”

 밖에서 울리는 소리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마당으로 나왔다. 절집 아래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골로부터 희뿌연 해무가 피어나는 새벽이었다.

 “인보, 네놈이 날 놀리는구나.”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요? 마구간에서 말 먹이까지 주고 왔답니다. 스님이 타고나가실.”

 투덜대며 방문을 꽝 소리 나게 닫는 그를 뒤로 하고 산길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혈구산 동쪽 낙맥 나지막한 혜산(慧山) 밑에 염하(鹽河·강화해협)를 바라보고 터 잡은 선원사는 새벽부터 활기가 넘쳤다. 공양간은 수백 명의 대중으로 북적댔다. 적어도 이 절집 안에서는 전란의 암울한 그림자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장경 경판이 가져다 준 상서로운 기운이었다. 판각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곧 낙성식이 거행될 참이었다.

 본래 이 자리에는 대장도감이 먼저 들어섰다. 2년 전, 무신정권의 집정 최이(崔怡)는 대장도감이 있는 마을과 붙어있는 산자락에 터를 닦고 자신의 원찰인 선원사를 창건했다. 송광사의 큰스님 진명국사(眞明國師)를 초대 주지로 모셨다. 진명국사는 200명의 문도들을 데리고 와서 선풍을 날렸다. 고종이 친히 다녀갔고 최이는 어가행렬을 방불케 하는 호위무사들을 거느리고서 수시로 드나들었다. 팔만대장경 판각을 주도한 그는 이곳에 판당을 세우고 경판을 모실 계획이었다.

 채비를 한 뒤 도감 사무소로 내려갔다. 스승은 도승록(都僧錄)을 지낸 천기(天其) 스님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는 대장도감의 이인자로서 스승 수기의 화엄종 계보를 잇는 학승이었다. 개풍 흥왕사 소속이지만 이곳 선원사 경내 대장도감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궁궐 장서각부터 가보자꾸나.”

 스승은 바랑을 짊어졌다.

 “스님, 장서각에 없으면 그냥 돌아오소서. 절대 바다는 건너지 마시고. 얼마 전 적들이 후퇴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위험합니다.”

 스승의 기질을 잘 아는 천기 스님이 신신당부를 했다.

 “아직 할 일이 남았는데 설마 염라대왕이 잡아가기야 하겠는고.”

 스승은 장삼자락 끝에 쌩한 바람소리를 달고 바깥으로 나와 마구간으로 향했다.

 “지밀 승정, 각별히 주의해서 큰스님을 뫼셔라.”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천기 스님은 사하촌 동구 밖까지 따라 나섰다. 하지만 누가 말린다고 들을 스승이 아니었다. 더구나 문헌을 찾고 뒤지는 일이 아닌가. 필요하다면 중국이나 일본까지도 능히 가실 분이었다. 우리는 외성과 궁성의 남문을 통과하여 궁궐 쪽으로 향했다. 네 번째 침공으로 다시 짓밟힌 본토와 달리 강화도 도성은 평화롭게만 보였다. 나는 생민들의 고통과 맞바꾼, 피난지에 흐르는 이 평화가 뇌꼴스러웠다.

 “와-. 와-. 타구! 타구!”

 대로변 넓은 격구장(擊毬場)에서 함성이 울렸다. 말을 탄 무관들이 뒤얽혀서 공치기를 하고 있었다. 구문 앞으로 치달리는 청군 공격수를 막아내려고 홍군들이 몰려들었다. 공격수의 장시 끝에 붉은 공이 올려져 있었다. 날쌘 공격수는 장시를 씽씽 돌리며 압박하다가 잽싸게 공을 날렸다. 공은 이십여 보 앞 좁은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득점!”

 청색 깃발이 올라가고 둥둥둥 북이 울렸다. 벌떼처럼 몰려든 구경꾼들의 환호성이 귀청을 때렸다. 차일 아래 의자에 앉은 배불뚝이 영감이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박수를 쳤다. 화려하게 치장한 두 기녀가 어깨를 주무른다. 집정 최이다.

글=김종록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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