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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통 250개분 고엽제 묻었다는 왜관 캠프 캐럴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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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3만200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경북 칠곡군 왜관읍은 20일 하루 종일 뒤숭숭했다. 주한미군이 1978년 왜관읍 동편에 자리 잡은 캠프 캐럴 기지에 드럼통 250개 분량의 고엽제를 묻었다는 미국 KPHO-TV의 보도 때문이다. 이날 왜관읍내에서 만난 주민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주민 정리(72)씨는 “주민 가운데 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생태계에 이상이 생겼다는 말은 못 들었다”면서도 “엄청난 양의 맹독성 고엽제가 묻혀 있다면 정말 기가 막힐 일”이라고 말했다. 칠곡군은 지금까지 공개된 당시 사진을 근거로 볼 때 고엽제가 묻혔다면 캠프 캐럴의 헬기장 주변일 것으로 보고 있다. 추정하는 장소는 낙동강과 직선 거리로 2.3㎞, 낙동강 지류인 동정천과는 80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20일 오후 경북 칠곡군 왜관읍 캠프 캐럴 기지 옆 칠곡 교육문화회관 옥상에서 환경부 등 정부 관계자들과 취재진이 기지 안을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 위는 1978년 주한 미군이 고엽제가 든 드럼통 250개를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기지 내 헬기장. [연합뉴스], [칠곡=프리랜서 공정식]<사진크게보기>


 비슷한 증언도 나왔다. 캠프 캐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주민 조모(73)씨는 “당시 헬기장 앞쪽에 큰 구덩이가 있었고 여기에 옷가지와 유통기한이 지난 전투식량 등을 묻곤 했다”며 “그 옆에 3단으로 쌓인 많은 드럼통과 ‘주의(CAUTION)’라고 적힌 팻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씨는 “그 드럼통에 고엽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다른 주민 정모(70)씨는 “66년부터 40여 년간 기지에서 창고 업무를 봤지만 고엽제를 드럼통에 담아 묻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부대 식수로 지하수를 썼다”며 “고엽제에 오염됐다면 내 건강에도 문제가 있지 않 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날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의 토양·수질 전문가 10여 명이 왜관으로 가 기지 주변을 조사했다. 조사팀은 헬기장에서 500m 떨어진 칠곡교육문화회관 옥상에서 기지 안을 살피기도 했다. 또 기지에서 외부로 나오는 실개천 3~4곳도 확인했다. 조사팀은 기지 주변에 있는 토양과 지하수를 채취해 오염 여부를 검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지 내부는 조사하지 못했다. 미군 기지를 조사하려면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사전에 합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호중 환경부 토양지하수과장은 “토양과 수질 오염 여부를 확인하는 게 시급하다”며 “현장 조사는 미군 측과 협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들은 이날 오후 캠프 캐럴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미군 측에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칠곡 주민들과 환경단체 등에선 고엽제가 묻혔다면 60년대 주한미군이 휴전선 부근에 뿌리다 남은 것이나 70년대 베트남으로 보내려다 한국 기지 내에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월터 샤프(사진) 주한미군사령관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현재 진행 중인 기록 검토에서는 캠프 캐럴에 고엽제가 저장됐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며 “캠프 캐럴에 고엽제를 매립했다는 주장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샤프 사령관은 “만약 화학물질이 발견된다면 적절한 방법으로 처리할 것”이라며 “발굴작업이 필요하다면 한국 정부 관계자들도 참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도 이날 육동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을 팀장으로 외교통상부와 환경부·국방부·행정안전부 관계자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육 국무차장은 “정부는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감안해 미국 측과 공동으로 기지를 조사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칠곡=홍권삼·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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