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경영] 제 2화 금융은 사람 장사다 (20) 국내 33번째 은행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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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하나은행은 1991년 자본금 1400만원, 직원 400여 명의 작은 은행으로 출범했다. 91년 7월 15일 서울 을지로입구 본사에서 열린 개업식에서 참석자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 셋째부터 정춘택 은행연합회장, 이용만 재무장관, 윤병철 하나은행장, 김건 한은 총재, 황창기 은행감독원장.


‘펑! 펑! 펑!’

 1991년 7월 15일 이른 아침, 을지로입구 네거리에 세 발의 대포소리가 울려퍼졌다. 하나은행이 그 출범을 알리는 행사였다. 33번째로 탄생한 막내 은행의 힘찬 출발을 알리는 축포였다.

 요란했던 개업식만큼이나 하나은행은 시작부터 기존 은행의 격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젊은 은행이었다. 은행 이름을 지을 때의 일이다. 사내공모를 통해 아이디어를 구했다. 그중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우리’였다. 하지만 재무부 실무자들에게 자문을 구해본 결과 ‘우리’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다시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내 나온 것이 ‘하나’였다. 그때 한 직원이 이런 말을 했다. “육군 사조직인 하나회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한 마당에 하나은행으로 이름을 정한다면 고객들이 오해하지 않을까요?”

 그 말에 하나라는 이름은 논의 대상에서 빠졌다. 직원 모두가 참여하는 투표 끝에 최종 결정된 이름은 ‘상아’. 하지만 나를 비롯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직원이 많았다. 결국 은행 전환을 위한 주총이 열리는 날 아침, 이사회 의장이었던 함태용씨와 상의해 하나은행이란 이름을 밀어붙였다. 곧이어 열린 주주총회에서 ‘하나은행’이라는 행명이 최종적으로 결정됐다.

 하나은행 로고도 처음에는 직원들이 모두 반대했다. 자음 ‘ㅎ’을 사람 모양으로 형상화하는 한편, 마치 사람이 원을 그리며 춤추는 것 같은 모양새를 연출했다.

 처음엔 붓으로 그린 심벌마크 바깥에 원으로 된 테두리가 있었다. 그것이 기업 심벌마크에 대한 당시의 고정관념이었고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 테두리마저도 과감하게 없애버렸다. 당시엔 ‘말도 안 된다’며 많은 이가 반대했다. 은행 내부에서조차 “너무 튄다”는 반대 의견이 있었다. 심지어 “미친 사람 널뛰는 모습 같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반대하는 임원도 있었다. 할 수 없이 내가 나서서 직원들을 설득했다. “새로 출발하는 은행이 수십 년 동안 영업해 온 큰 은행들을 모방만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미친 짓 한번 해봅시다.”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해서는 33번째 은행이란 꼬리표를 뗄 수 없고 남들과 다르게 해야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자 경영철학이었다. 결국 테두리를 없앤 심벌마크는 많은 이의 주목을 끌었다. 찬사도, 비난도 있었지만 일단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한 것이다.

 은행 업무에서도 각종 ‘미친 짓’을 많이 했다. ‘스카이뱅크’가 그 예였다. ‘남들과 다르게’란 경영 마인드가 속속 실천됐고, 좋은 성과를 냈다. 당시 은행의 모든 영업점은 대로변이나 큰 빌딩의 1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모두가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은행의 영업점은 대로변 1층’인 게 당연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고객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편리한 위치가 어디일까. 조금 구석진 자리라도 고객이 접근하기에 편리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엔 상가나 아파트 단지 안에, 시장이 있는 곳엔 시장 어귀에, 기업들이 몰려 있는 빌딩에는 중간층이나 꼭대기층에 점포를 내기로 했다.

 처음엔 “하나은행이 어디에 박혀있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영업점은 주민들이 산책하는 기분으로 은행을 드나들 수 있어서 편리했다. 빌딩의 중간층에 있는 영업점에선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법인 고객들이 업무를 볼 수 있었으므로 반응이 매우 좋았다.

 하나은행은 기존엔 없던 튀는 마케팅을 여러 가지 했다. 각 영업점들은 은행의 탄생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자발적으로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중 하나가 반상회 참석이었다. 여의도 영업점이 아파트 반상회에 들어가 기념품을 주며 인사한 게 호응을 얻자 다른 영업점에도 전파됐다. 부산 하나은행은 개점 홍보를 위해 농악대를 동원하기도 했다. 풍물패를 앞세우고 직원들이 뒤따라 주민들에게 떡을 나눠줬다. 송파 하나은행은 오전 8시에 문을 열어 출근길에 들른 고객들이 작성한 입금전표를 받아두는 ‘모닝뱅크’ 서비스를 선보였다. 안산 하나은행은 금융실명제가 실시된다는 발표가 나오자 아파트 단지 길목에 파라솔을 펴놓고 상담해 주는 ‘파라솔 뱅킹 서비스’를 도입했다.

 지금은 어느 은행에서나 볼 수 있지만, 영업점에 나이든 고객을 위해 돋보기를 마련해 놓거나, 카운터에 사탕을 놓아둔 것도 모두 하나은행 임직원들의 창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윤병철 전 우리금융 회장
정리=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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