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다혈질의 전형적 '하버드맨' MS 새 CEO 스티브 발머

중앙일보

입력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빌 게이츠(44) 회장은 지난 1월 13일 25년 동안 지켜온 최고 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 기술개발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의 총 경영은 게이츠의 오랜 친구이자 경영측면에선 ''오른 팔'' 이나 다름없는 스티브 발머 사장(43)에게 넘긴다고 발표했다. 발머로서는 사장에 오른 지 2년도 안 돼 CEO 자리에 오른 셈이다.

디트로이트에서 자란 발머는 스위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포드 자동차의 중간 관리자였다.

발머와 게이츠가 처음 만난 때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이었다. 기숙사 위아래층에서 생활하며 포커로 밤을 지새는 등 막역한 사이였다. 그러나 컴퓨터에 빠져 2학년 때 중퇴했던 게이츠와 달리 발머는 학교 생활에 충실했다.

풋볼팀 관리를 맡는가 하면 대학신문·문학잡지 등에서 활동했다. 공부도 잘 하고 스포츠·문학에도 관심 많은 전형적인 ''하버드맨'' 발머는 응용수학과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를 졸업했다.

이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포록터 앤 갬블사(P&G)의 케이크 재료 마케팅 담당으로 재직했다.

그러나 스탠퍼드를 졸업하지는 못했다. 1980년 게이츠가 발머를 MS로 불러들였기 때문이었다. 평소 다혈질적인 성격이라 "외교관은 절대 못 될 사람" 으로 분류되던 발머는 신생기업 MS에 오자마자 회사 규율을 세우고 사내 곳곳을 돌아 다니며 직원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당시 어찌나 소리를 지르고 다녔던지 발머는 후에 목수술까지 했다. 이런 열정이 게이츠·폴 앨런(83년 MS 퇴임) 같은 창업 멤버가 아닌데도 발머를 "MS의 오늘을 있게 한 중요 인물" 로 꼽게 만드는 이유가 됐다.

발머는 미국 법무부가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MS를 제소하자 즉각 "빌어먹을 재닛 리노(미 법무장관)(To heck with Janet Reno)" 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과격한 표현으로 입방아에 올랐으나 그의 이 한 마디에 미국 정부에 대한 MS의 감정이 그대로 실려 있다는 평을 받았다.

발머는 MS에서 생산·지원담당 부사장 등 여러 직책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친구 덕을 본 것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MS 공동 창업자 폴 앨런도 "발머의 발탁은 전적으로 그의 능력 때문" 이라며 "현실적이고 활기 넘치는 감각있는 경영자" 라고 극찬에 마지 않았다.

실제로 게이츠는 1985년 새 윈도 프로그램의 운송 책임자였던 발머를 사무실로 불러 "연말까지 상품을 판매대에 올려 놓지 못하면 해고하겠다" 고 엄포를 놓았던 일화도 있다.

4년 전 발머는 게이츠의 결혼식에서 신랑에 앞서 식장에 입장하는 들러리를 맡아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상반된 성격으로 궁합이 잘 맞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너지가 넘치기는 둘다 마찬가지지만 대외적인 업무에 소극적인 게이츠에 비해 발머는 외향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또 게이츠가 MS의 비전을 제시해 왔다면 소소한 안살림은 발머가 맡아 왔다. 게이츠는 앞으로 ''수석 소프트웨어 개발자(Chief Software Architect)''로 연구에만 몰두하기 위해 MS를 든든히 지켜줄 발머의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MS지분 4%를 소유한 발머는 지난해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 갑부 4위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일상 생활은 평범하기 짝이 없다. 매일 조깅을 즐기고 농구 시합에서 절대로 지기 싫어하는 열성적인 스포츠맨이다. 전직 MS 직원과 결혼해 세 자녀를 둔 발머는 밤마다 아이들을 재우며 침대맡에서 대화를 나누는 ''보통 아빠''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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