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체전은 끝났지만…그들의 도전은 계속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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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향기씨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웃고 있다. 심한 뇌성마비인 정씨는 웃는 표정을 잘 짓지 못한다.

노란색 머리, 파란색 모자, 은빛 디지털 카메라와 MP3 플레이어를 목에 걸고, 인기 가수 채연의 최신 댄스 가요를 흥얼거리는 즐거운 청춘.

장애인 체전 마지막 날인 13일 충북대 체육관에서 만난 정향기(31)씨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중에서도 중증이다. 보치아 종목에 광주 대표로 참가한 그는 손과 발을 사용하지 못해 보조기구를 이용해 공을 던진다. 왼손목은 90도로 굽었고, 눈은 제대로 뜨지 못한다. 그의 말은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어눌했다.

그래도 그는 즐거웠다. 보치아 8강전에서 탈락했지만 "내년에 더 잘하면 된다"며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정씨는 '계절의 여왕' 5월에 열리는 장애인 체전을 만끽하고 있다.

그의 전동 휠체어도 정씨처럼 튀었다. 사이드 미러를 달았고, 핸들에는 손목시계를 끼워놨다. 휴대전화 거치대도 있고, 의자는 승용차용 시트다. 후진하면 "삐-"하는 경보음도 난다. 카세트 테이프가 담긴 작은 가방과 야간 통행을 위한 경광등도 있다. 다른 장애인들도 신기한 듯 그의 휠체어를 이리저리 둘러보곤 한다.

정씨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돌아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달게 됐다"며 "폐차 승용차에서 시트를 얻었고, 오토바이 가게에 가서 사이드 미러를 달아 달라고 부탁했다. 하려고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뇌손상으로 인해 사지가 마비되는 뇌성마비를 앓았다. 뇌성마비는 흥미와 기쁨.슬픔 등 감정을 느낄 수 있으나 성장 과정에서 장애로 인한 좌절을 겪어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한 상태가 되기 싶다.

그는 운동을 하면서 적극적이 됐다고 한다.

"운동을 하고 나서는 경련이 많이 없어졌다. 비장애인 자원봉사자들을 만나면서 대인관계도 넓어졌다. 아주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정씨가 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것도 보치아 때문이다. 다른 팀의 공 굴리는 보조기구는 어떤지 사진을 찍어 놓고 응용하기 위해서다.

광주 행복재활원 교사 한석근(39)씨는 "정씨는 뭐든지 혼자서 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목욕과 식사만 봉사자의 도움을 받고 손가락 하나로 휠체어를 움직여 돌아다니면서 일을 본다. 장애인 문학회의 시인이며, 특히 지난해 보치아 경기에서 국가대표 선수를 이긴 후 자신감에 차 있다"고 말했다.

한편 13일 청주종합운동장에서 막을 내린 제25회 장애인체육대회에서 양궁 6관왕인 이화숙(40.경기) 선수가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으며 서울이 우승했다.

청주=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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