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현욱의 과학 산책

의료 통계의 허상과 실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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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콘텐츠본부장

*미국에서 호흡기 질환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주는 애리조나다. 여기서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은? 답 : 살인적으로 공기가 나쁜 주인 모양이다. 피닉스의 무분별한 도시 확장 탓에 공기가 엄청나게 오염됐을지 모른다. 진상 : 전국의 호흡기 질환자 다수가 이주해온 것이다. 미국에서 공기가 가장 좋은 주의 하나로 꼽히는 이곳으로.

 *서울의 한 대형병원 중환자실 입원자 8명이 정체불명의 폐렴에 걸린 환자였다. 게다가 이 중 한 명이 사망했다. 여기서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은? 답 : 신종 유행성 폐렴이 집단으로 발생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이 병원이 진원지일지도 모른다. 진상 : 전국 각지에서 발병한 환자들이 상태가 악화되자 이 병원으로 이송된 것이다. 호흡기 관련 명의들이 즐비하고 중환자실 규모도 가장 큰 이곳으로. 또한 폐렴은 중환자실의 사망 원인 제1호로 꼽힌다. 지난주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소위 ‘정체불명 폐렴’ 소동의 진상은 바로 이것이다. 애초에 환자가 발생했던 지역에서는 추가 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폐렴 중 30% 정도는 원인이 파악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 바탕으로 ‘신종 폐질환 환자’가 전국에 퍼져 있는 듯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민 12만여 명을 인터뷰한 결과 동성애 남자는 과거나 현재 암 진단을 받은 일이 보통 남자의 2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진단 시기도 일반인보다 평균 10년 일렀다. 15일자 학술저널 ‘암(Cancer)’에 실린 논문의 내용이다. 여기서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은? 답 : 실제로 남성 동성애자는 직장암 발생률과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률(암과 연결된다)이 더 높다. 이 탓에 암에 더 많이 걸리는 것일 수 있다. 진상 : 아직 모른다. 인터뷰 대상이 생존자들뿐이기 때문이다. 동성애 남자가 암에 걸릴 위험이 더 높은 것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 암 발생 후의 생존율이 더 높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검사를 특히 열심히 받고 있어 남보다 10년쯤 일찍 암을 발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결론 : 전문가들의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영국 BBC 뉴스는 기사 첫머리부터 추가 연구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이라면 “게이는 암 위험 두 배” 같은 식으로 보도하기 십상이다. 지난주 폐렴을 보도하는 태도에서 여러 차례 확인된 사실이다. 주요 방송조차 “신종 폐질환 환자, 전국에 퍼져 있다? 정황 포착” 같은 제목의 뉴스로 불안감을 부추기지 않았던가.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콘텐츠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