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이백의 유전자, 법가 의 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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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음주운전을 법으로 엄벌하는 관행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오래전부터 뿌리내렸다. 그야말로 ‘주요 2개국(G2) 시대’의 글로벌 스탠더드다. 그런데도 물러터졌다고 할 정도로 원칙 없는 한국인의 음주관(飮酒觀)은 어디서 왔을까. 동아시아 최고의 음주 예찬론자인 이백(李白)의 유전자, 엄벌주의를 강조한 법가(法家)의 전통 중에서 한국인들은 어떤 인자를 더 많이 물려받았을까.

 미국에서 음주운전 금지법을 위반한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언론 기고문에서 공개적으로 변호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을 보면서 생긴 의문이다. 우리의 음주문화를 되돌아보면 가히 한국인은 이백의 적통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백은 일찍이 『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하늘과 땅도 술을 사랑했으니 술을 좋아하는 것은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노래한 시선(詩仙)이다.

 그러나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요즘엔 함부로 술을 마시면 패가망신하기 쉽다. 특히 1일부터 중국에서는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되면 수갑을 차고 형사처벌(1~6개월 구속)을 각오해야 한다.

 야구광이란 개인적 취향이 어떻든 총리까지 지낸 인사가 음주운전자를 공공연히 변호했단 소식을 들었다면 누구보다 발끈했을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중 한국대사관 노정환 법무관(부장검사)과 맹훈재 영사(경찰대 9기)다. 두 사람은 평소 “국내에서 발생한 살인·강간·폭력 범죄의 약 35%가 술 취한 상태에서 발생한 통계가 있다”며 지나치게 관대한 국내의 음주문화를 질타해온 원칙론자들이다.

 서울지검 특수부에서도 활약했던 노 법무관은 “중국인들은 40~50도짜리 바이주(白酒)를 마셔도 술에 만취해 싸우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는 형법(18조4항) 조항에서 비결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형법에 ‘술 취한 사람이 죄를 범한 경우라도 형사책임을 응당 져야 한다’고 못 박아 주취감경(酒醉減輕·음주를 이유로 형량을 깎아줌)의 여지가 없다. 술에 관한 한 중국은 철저한 법가의 엄벌주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한국 교민 관련 사건·사고를 많이 처리해온 맹 영사는 베이징 공안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 땅에서 한국인들이 음주 사고를 가장 많이 낸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 법조계에선 ‘술이 최고의 변호사’라는 말이 나돌 정로 형사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주취감경 규정을 악용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해외에서 국가 이미지 훼손을 막기 위해서라도 건전한 음주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청나라 문인 오교(吳喬)는 평론집 『위로시화(圍爐詩話)』에서 ‘산문(散文)은 밥, 시가(詩歌)는 술’이라는 비유법으로 산문과 시의 차이를 절묘하게 표현했다. 산문은 쌀로 밥을 짓듯 재료의 형태가 변하지 않지만, 시는 쌀로 술을 빚듯 재료의 형태와 성질이 변한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밥과 산문만 있으면 세상은 너무 건조할 것이다. 마땅히 술과 시를 곁들여야 인생이 윤택해진다. 그럼에도 술과 더불어 인생의 멋을 논하려면 최소한 이백의 후예로서 부끄럽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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