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전도사에서 비판자가 된 니컬러스 카 ‘인터넷 혁명의 이면을 고발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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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1960년대 말에 뿌려졌다. 꽃망울을 맺기 시작한 것은 90년대다. 길게 봐야 40여 년, 짧게 보면 고작 20년 정도다. 하지만 이 기간에 인터넷은 세상을 완전히 바꿔놨다. 인터넷의 등장이 ‘혁명’인 이유다. 인터넷이 바깥세상은 물론 인간의 사고방식과 뇌 구조까지 바꿔놓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것도 나쁜 쪽으로 말이다. 니컬러스 카(52)가 이런 주장의 대표 주자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발간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편집장을 지낸 경영 컨설턴트다. 뉴욕 타임스·월스트리트 저널·가디언 등에 기고해 온 유명 정보기술(IT)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소문난 얼리 어답터이자, 2007년 미 컴퓨터 전문지 ‘e위크’가 뽑은 ‘IT업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그는 왜 옛 동지의 등에 비수를 꽂았을까. 얄궂게도 그와의 인터뷰는 e-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김선하 기자 odinelec@joongang.co.kr

니컬러스 카의 최근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원제 The Shallows)』은 인터넷이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에 대한 고발로 가득 차 있다. 지구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이 거미줄 같은 정보망이 인류의 사고(思考)를 점점 더 얄팍하게 만들고 있다는 게 핵심 주장이다. ‘인터넷 숭배’에 대한 그의 비판은 많은 관심을 끌었고, 이 책은 올해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후보 셋 중 하나에 포함됐다.

●당신은 인터넷이 뭐라고 보나. 인류를 망치는 ‘악’인가?

 “인터넷의 가치를 통째로 부정하자는 건 아니다. 장점도 많다. 인터넷은 내게도 매우 유용한 도구다. 우선 과거에 비해 연구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내 생각을 블로그를 통해 바로바로 알릴 수도 있게 됐다. 많은 사람과 효율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인터넷은 내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놨다. 인터넷에 익숙해지면서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는 게 훨씬 어려워졌다.”

 카는 1977년 다트머스 대학에 들어갔다. 전공은 문학이었지만 일찌감치 IT에 눈을 떴다. 이런 성향은 하버드대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는 80년대 중반부터 매킨토시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뤘고, 90년에 이미 컴퓨터 통신을 자유롭게 사용했다. 2000년대 들어 누구나 정보를 생산해 인터넷에서 이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웹 2.0’이 등장하자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세계경제포럼(WEF) 클라우드 컴퓨팅 프로젝트 운영위원도 맡았다.

●인터넷 옹호자 아니었나? 왜 생각을 바꿨나.

 “이미 말한 대로 인터넷이 내 집중력을 빼앗고 있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특히 책을 읽을 때조차 내 마음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몇 시간이든 두꺼운 책과 장문의 기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달라졌다. 한두 페이지만 넘겨도 금세 정신이 딴 곳에 가버린다. 독서가 ‘투쟁’이 돼버린 것이다. 인터넷이 인류의 지성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인가.

“내 경우를 예로 들면 인터넷을 쓰면서 대충 훑어보기와 멀티태스킹(다중작업)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반면 사색·명상·숙고(熟考)와 같은 사고 능력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처음엔 이유를 모르겠더라. 그래서 중년이 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컴퓨터를 꺼놨을 때도 e-메일을 확인하고, 구글을 검색하고, 각종 링크를 클릭하고 싶어 몸살을 앓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인터넷이 나를 ‘초고속 정보처리 기기’와 비슷한 무엇인가로 바꿔놓은 것이다. 나는 과거의 뇌를 잃어버렸다.”

●얼리 어답터였던 당신의 특수한 사례 아닐까.

 “사람들이 특정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따라서 분명 개인적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잡지사 출신으로 온라인 미디어 관련 블로그를 운영 중인 한 친구는 ‘책 읽기를 완전히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 친구의 전공이 문학이다. 인터넷 환경에 익숙해진 뒤 인쇄 매체는 물론 인터넷 블로그에서조차 긴 글은 읽기 힘들어졌다는 사람도 많이 발견했다.”

●이런 현상이 왜 발생하나.

 “인터넷이 어떤 방식의 사고를 장려하는지 생각해보라. 인터넷은 작은 조각들로 이뤄진 많은 정보를 재빨리 훑어보라고 강요한다.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컴퓨터 화면 위의 각종 방해물 사이를 곡예하듯 움직이면서 말이다. 물론 이런 방식의 사고에 장점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터넷을 점점 폭넓은 분야에서 더욱 많이 사용하게 됨에 따라 깊이 있는 사고를 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사색은 창의성과 공감의 바탕이 된다. 균형 잡힌 개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물론 사색·명상·숙고를 하지 않더라도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효율과 생산성이 인간 삶의 전부는 아니지 않나. 인터넷이 사람들을 평면적이고, 지적 독창성이 떨어지는 흥미롭지 못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인터넷의 영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닐까.

 “아니다. 되레 지금까지 실제보다 축소됐던 측면이 있다고 본다. 물론 인류의 지성사에 영향을 미친 기술이 인터넷 하나뿐만은 아니다. 지도가 우리를 바꿨고, 시계도 영향을 줬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타자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글이 과거에 비해 간결해졌고, 축약된 문체로 바뀌었다. 그는 ‘글쓰기 도구가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기계식 타자기가 이런데 인터넷은 어떻겠나. 노트북·넷북·태블릿PC·스마트폰…. 인터넷은 지금껏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다른 어떤 미디어보다 사람의 행동과 두뇌에 시시각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부환경 때문에 사람의 뇌가 바뀔 수 있을까.

 “과거엔 유년기가 지나면 인간의 뇌 구조가 고착화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성인의 뇌는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간 그렇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나왔다. 성인의 뇌도 주변환경과 새로 얻은 경험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계속 훈련하는 기능은 강화하고, 그렇지 않은 기능은 약화시키면서 말이다. 1990년대 후반 영국 학자들이 근속 연수가 다양한 런던 택시기사들의 뇌를 검사해봤다. 택시기사들은 뒤쪽 해마, 즉 공간과 관련된 표현을 저장·조작하는 부분이 일반인보다 훨씬 넓었다. 근무 기간이 길어질수록 차이가 더 컸다. 동시에 택시기사의 해마 앞부분은 보통사람보다 좁았다. 뒤쪽 해마에 더 넓은 자리를 내주기 위해서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도 뇌에 영향을 주나.

 “책을 읽을 땐 뇌의 언어·기억·시각 등을 처리하는 부분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하지만 상황 판단과 의사결정에 관련된 부분은 크게 활성화되지 않는다. 반면 인터넷을 검색할 때는 의사결정에 관련된 부분이 집중적으로 활성화된다. 웹페이지를 볼 때는 수많은 각종 링크를 평가해 관련 내용을 검색할지 말지를 즉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뇌는 혹사당한다. 뇌가 혹사당하면 사람은 산만해진다. 이해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의 하이퍼텍스트는 클릭 한 번으로 서로 다른 문서로 이리저리 건너뛸 수 있게 해준다. 같은 내용을 하이퍼텍스트로 읽은 사람들이 종이에 인쇄된 글을 읽은 사람에 비해 이해의 정도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당신의 인터넷 비판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반론도 있는데.

 “인터넷이 인간의 특정한 인지 기능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특히 시각 능력을 예민하게 키운다. 반응 속도라든가, 눈으로 들어온 정보에 대해 곧바로 손이 반응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이해력을 떨어뜨리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기억을 오래 지속시키기 위해 필요한 깊고 주의력 있는 사고도 방해한다.”

●정보 전달 수단으로서 책과 인터넷은 어떻게 다른가.

 “책과 인터넷은 둘 다 ‘정신의 도구’다. 하지만 이들이 촉진하는 사고의 종류는 완전히 다르다. 책은 독자에게 주의력을 요구한다. 대신 일상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산만함으로부터 독자를 보호해준다. 인터넷은 정반대다. 처음부터 사람의 주의력을 흩어놓도록 디자인돼 있다. 멀티미디어, 하이퍼텍스트, 쌍방향 메신저 같은 것들은 주변의 산만한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기는커녕 되레 산만함을 더 보탠다. 컴퓨터 화면 위의 단어들은 서로 내가 잘났다고 다투는 엄청난 분량의 자극제다. 쉽게 말해 책은 고요하고, 집중하는 사고를 가능하게 해준다. 반면 인터넷은 산만하고, 조급하고, 피상적인 사고를 부추긴다. 종이책 대신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면서 우리는 자신의 뇌를 빠르지만, 수박 겉핥기 식의 사고를 하도록 훈련하고 있는 셈이다.”

●책과 인터넷에 차이점이 또 있나.

 “인터넷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정보를 강요한다. e-메일, 메신저, ‘딩동’ 소리를 울려대는 각종 알림음을 통해서 말이다. 각종 검색엔진도 마찬가지다. 도서관의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은 다르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 때는 종일 수만 권의 책에 둘러싸여 있더라도, 인터넷에서 느끼는 정보 과부하를 느끼지 않는다. 화면에 떠 있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은 도서관에서 정보를 얻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행위다.”

●전자책이 이런 문제를 줄여주지 않을까.

 “과연 그럴까? 내 생각은 다르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전자책은 점점 더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를 닮아간다. 전자책 단말기는 독서뿐 아니라 인터넷에 연결해 웹사이트를 방문하고, 각종 링크를 클릭하고, 수많은 온라인 작업을 하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디지털책? 기존의 종이책보다는 인터넷 웹사이트와 훨씬 더 닮은 매체다. 독자를 산만함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게 아니라 되레 그 속으로 밀어 넣는다는 얘기다.”

●인터넷이 인류의 ‘기억 저장공간’을 넓힌 공로는 있지 않나.

 “기억을 ‘아웃소싱’하면 문화는 시들해지게 마련이다. 사람이 기억을 인터넷과 같은 외부 공간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의 문화도 위협받는다. 개개인의 기억이 모여 전체 문화를 떠받치는 집단적 기억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문화란 뭘까. 문화는 컴퓨터의 이진법 숫자로 바꿔서 인터넷에 업로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문화라는 건 구글에서 검색할 수 있는 정보 이상의 것이란 얘기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우리 지적 생활의 깊이가 줄어들고, 덜 흥미로워지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동시에 우리 문화도 점점 얄팍해지고 있다.”

 카는 2008년에도 구글을 비판한 적이 있다. ‘구글이 우리를 멍청하게 만들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도발적인 글을 썼다. 당시 이 글은 미국 IT 업계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도 구글에 대해 날을 세웠다. “구글은 데이터의 빠른 수집·분류·전송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자신들의 사업뿐 아니라, 이 회사가 인터넷상에 건설하려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위협하는 요소로 본다”고 비꼬았다.

●구글이 뭐가 문제라는 건가. 인터넷 세상을 배후에서 조종이라도 한다는 건가.

 “그런 뜻이 아니다. 구글은 ‘선의(善意)’의 회사다. 문제는 인간의 정신·사고에 대한 그들의 인식 폭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구글은 인간의 두뇌가 정보처리에서 최대한의 효율성을 추구해야 하는 산업기계와 같다고 믿는 듯 하다. 이런 관점은 조용하고, 사색적이고, 따라서 때로 비효율적일 필요도 있는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만든다.”

●당신 생각에 동의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당장 인터넷 회선을 끊어야 하나.

 “개인적 차원에선 그런 저항이 일부 가능할 수도 있다.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디지털 미디어를 가능한 한 덜 쓰고, 사색·명상하는 훈련은 좀 더 많이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그건 또 완전히 다른 얘기다. 우리가 인터넷이 없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안별로 인터넷이 주는 이익과 그 대가로 우리가 치러야 하는 비용을 동시에 놓고 따져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그간 아이들을 가르칠 때 온라인을 활용하면 지적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많이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이런 주장에 의문을 제기할 때다.”

j칵테일 >> 콜로라도 산골로 이사까지

퓰리처상 심사위원들은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고도의 기술적 소재를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게 풀어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가 역사·과학·문학을 넘나들며 펼쳐놓은 생각의 폭을 따라잡는 것이 말처럼 간단하진 않았다. “인터넷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미국 보스턴 외곽에 살던 그는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콜로라도 산악지대로 이사를 했다. 인터넷·휴대전화 등의 끊임없는 방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단다.

●이사하니 뭐가 달라지던가.

 “일단 새집에선 휴대전화가 안 됐다. 인터넷은 속도가 매우 느렸다. 나는 책을 쓰는 데 필요한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 먼저 e-메일 사용을 확 줄였다. 1분 단위로 새 메일을 자동 확인하도록 돼 있던 설정부터 없앴다. 페이스북·트위터 계정도 없애거나 휴면 상태로 바꿨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도 당분간 유보했다. 처음엔 정말 괴로웠다. 나도 모르게 ‘새 메일 확인’ 버튼을 누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나게 도움이 되더라. 내 마음은 훨씬 고요하고 평온해졌다. 집중력도 어느 정도 좋아졌고 말이다.”

●책 쓰기를 마친 지금은 어떤가.

 “상당 부분 다시 옛날 습관으로 돌아왔다는 점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이 싸움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콜로라도에 살고 있고 말이다.”

니컬러스 카
1959년 미국에서 태어나 다트머스대와 하버드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편집장 출신으로, 유명 컨설턴트인 동시에 뉴욕 타임스·월스트리트 저널(미국), 파이낸셜 타임스·가디언(영국)·디차이트(독일) 등에 기고해 온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편집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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