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정치·생명·사랑의 값은? 시장주의자들에게 던진 질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8년 10월 대선 후보 시절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의 가격』에 따르면 오바마는 대선 광고비로 7억 3000만 달러를 썼는데, 이를 득표수로 나눠보면 한 명당 10달러 50센트를 지불한 셈이다. 정치도 가격의 측면에서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포토]


경제를 읽으면 세상이 보인다. 모든 것의 뒤편에는 ‘돈의 문제’가 숨겨져 있다. 다만 그게 잘 안보이고, 때론 너무나 난해하게 느껴진다.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쾌도난마(快刀亂麻)식의 명쾌한 설명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전문가의 진단이라고 옳다거니 따를 일도 아니다. 실타래처럼 복잡한 경제, 그 속을 들여다보는 신간을 추렸다.

모든 것의 가격
에두아르도 포터 지음
손민중 외 옮김, 김영사
364쪽, 1만4000원

무릇 책이란 재미있어야 한다. 이해하기 어렵거나 지루한 책은, 읽히지 않은 기사처럼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재미만 준다면 좋은 책이 되기는 어렵다. 의미가 담겼어야 한다. 문학작품이든 사회과학 책이든 삶과 세상을 보는 통찰력을 키워주어야 좋은 책이라 불릴 만하다. 여기에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녔다면 이른바 고전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뉴욕타임스의 금용· 경제부 수석기자가 쓴 이 책은 일단 좋은 책에 든다. 한창 각광받는 경제학의 새 분야인 행동경제학을 다뤘는데 흥미로운 사례를 다양하게 들어가며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의미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모든 것에는 가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조금 도발적으로 들린다. 사람의 생명, 사랑에도 값이 있다는 이야기는 어딘가 불편하다. 물론 지은이가 말하는 가격은 상거래의 기준이 되는 가격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 매기는 ‘경제적 잣대’를 의미한다.

 우리는 사람의 생명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하며 이는 모든 이에게 적용된다고, 적어도 되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예를 들어보자. 9·11테러 희생자 2800명의 직계가족들에 대해 미국 정부는 평균 약 200만 달러를 보상했다. 말하자면 ‘생명값’이다. 그런데 같은 희생자라도 남성에 비해 여성이, 젊은이에 비해 노년층에 대한 보상금이 적었다. 가장 큰 차는 소득에 따른 것이었다. 연봉이 400만 달러 이상인 8명의 가족은 640만 달러를 받았고, 페루 출신의 불법이민자는 24만 달러로 평가됐다. 생명도 가격이 매겨지며 그것도 제 각각인 실례다.

 심지어 공짜도 가치가 있단다. MIT에서 학생들 대상으로 선물카드 10달러짜리를 1달러에 살지, 또는 20달러짜리를 8달러에 구매할지 묻는 실험을 했다. 학생들의 3분의 2가 후자를 택했다. 여기까진 당연하다. 후자를 택하면 이득이 3달러 많으니까. 한데 카드 가격을 1 달러 내려 물으니 이득은 똑같은데도 전원이 전자를 선택했다. 3달러 이득을 더 보는 것보다 ‘완전 공짜’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는 뜻이다. 이는 인간은 비용과 편익을 분석해서 선택하는 합리적 동물이라는 주류 경제학의 기본 전제에 대한 야유로 읽힌다.

 정치문화에서도 구매력이 위력을 발휘한다. 버락 오바마 후보는 대통령 선거 때 광고비로 7억 3000만 달러를 사용했는데 이를 득표수로 나눠보면 한 명당 10달러 50센트를 지불한 셈이었다. 이에 반해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는 1표당 5달러 60센트를 썼다. 이것이 오바마의 승리와 전혀 무관하다 할 수 있을까. 1972년부터 90년까지 미국 하원의원 선거를 분석한 결과 10만 달러를 더 지출할 때마다 현직 의원에 지지율이 평균 0.1%p 상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도 있다.

 가격에 의한 왜곡은 정치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유타 주립대학 경제학자들의 2005년 조사를 인용했다. 이 조사에서 미국 소비자들은 고통 없이 도살한 동물의 고기를 사용한 샌드위치라면 가격을 9%까지 더 낼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멕시코에선 샌드위치 값이 이 정도 더 오르면 아예 고기소비량을 5% 줄일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동물 보호’라는 도덕적 가치도 결국 가격의 문제로 치환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은이는, 이렇게 흥미진진하지만 어쩌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 걸까. 그는 가격이 우리 심리와 삶에 미치는 다양하고 기묘한 영향을 보여주면서 시장은 만능이 아니라는 것, 인간은 이기심만 좇는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운다. 나아가 2008년 금융위기를 ‘가격의 실패’로 규정하며 새로운 경제학을 기대한다.

 아무래도 지은이는 “자기통제의 시대는 끝났고, 자유방임주의도 끝났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옳다고 생각됐던 전능한 ‘시장의 시대’도 끝났다”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말에 끌리는 듯하다. 연애며 갱들의 사생활까지 다양한 사회현상을 경제학의 주제로 삼았던 『경제학 콘서트』등 기존의 행동경제학 책과 달리 보는 이유다. 먼 산 너머 새로운 경제학이 다가 오고 있음을, 아니 와야 함을 알리는 북소리 같다.

 사족. 원저에 있던(편집자에게 확인했다) 주(註)가 번역판에선 사라졌다. 한국 독자들에게 낯설다는 이유인데 풍성한 인용의 출처를 알 수 없어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김성희 객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