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도전21 - KBS국악관현악단 정수년씨

중앙일보

입력

우리 음악은 '국악' 이라는 이름으로 한정시키고 서양의 고전 음악을 '음악' 이라고 부르는 현실에서 국악 연주자들이 설 자리는 너무나 좁다. 바이올린.첼로 연주자들이 앞다퉈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설 때 이들은 무명의 설움을 견뎌야 한다.

실험적인 국악 실내악단 슬기둥의 창단 멤버이자 KBS국악관현악단 단원으로 있는 해금 연주자 정수년(36) 씨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 하지만 주어진 여건을 원망하기보다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국악을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 노력 중의 하나가 친숙한 서양음악을 해금으로 연주하는 일이다. 27일 오후 7시 30분 KBS홀에서 막이 오르는 KBS국악관현악단의 청소년음악회에서 정씨는 가야금 4중주단 '사계' 와 함께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곡 '오블리비온' 을 해금으로 선보인다.

정씨는 "해금 연주에는 잘 쓰지 않는 고음이 많아 연습이 어려웠다" 면서도 "피아졸라 원곡의 바이올린 선율이 솜사탕같다면 내 연주는 간을 잘 맞춘 토속적인 맛" 이라며 관객들의 반응에 자신감을 내비친다.

잘 알려진 곡을 국악으로 들려주는 것이 과연 국악 대중화에 직접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우리 악기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거죠. '이 악기는 도대체 무슨 악기이기에 바이올린으로 연주할 때와 이렇게 느낌이 다를까' 하고 관객들이 궁금해하면 일단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관심이 기초가 되기 때문이죠. 이 단계에서 좀더 나아가면 국악이냐 아니냐의 경계를 넘어 음악 그 자체를 흡수하게 되는 거지요. "

많이 들어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데, 바로 많이 듣게 만들어 주는 장치가 친숙한 명곡 연주라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음반작업에도 관심이 많다. 대중이 듣기 편한 음반을 내기 위해 뉴에이지 듀오 '시크릿 가든' 의 곡 등을 국악으로 편곡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많은 국악기 중에 왜 하필 해금이 크로스오버 작업에 각광받는 것일까.

"해금은 바이올린과 같은 찰현 악기에요. 바이올린이 주는 강렬한 느낌처럼 현이 주는 강한 음색이 매력적이라고나 할까요. "

그렇지만 어려움도 만만찮다.
올해 가질 개인 발표회에서 연주하려고 마음먹은 '지고이네르바이젠' 도 해금의 특성 때문에 원곡에 나오는 화음을 만들어 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악보를 보니 내가 이걸 해낸다면 정말 해금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어렵다고 포기하기보다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연주자가 있어야 그 악기도 발전하지 않을까요. "

소리가 마음에 들기 전까지는 감히 이 곡을 들고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정씨는 올해에 안되면 내년, 내년이 안되면 그 이듬해라도 꼭 해내겠다고 벼른다.

정씨가 국악을 현대적으로 접근하려고 시도한다고 해서 전통을 소홀히 하는 연주자는 아니다. 전통의 바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