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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과잉 이념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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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 재·보선 패배 이후 뒤늦게 부산을 떨고 있는 한나라당을 보며 든 생각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전 일이기 때문이다. 각종 정보로 넘쳐날 것 같은 집권세력이 민심의 이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건 뭐가 잘못돼도 아주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렇게 된 중요한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한나라당이 아무리 많은 정보가 있어도 제 식으로 여론을 읽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때 세간의 흥밋거리였던 ‘강남 좌파’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응에서 그런 태도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용어가 보수 진영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부유층이 몰려 있고 한나라당의 견고한 지지 기반인 서울 강남 지역에 어떻게 좌파가 존재할 수 있느냐라는 ‘예상 밖의’ 현상에 대한 놀라움 혹은 신기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 뒤에는 현 정부에 대한 지지와 반대를 우파와 좌파라고 하는 이념적 틀로 치환해 바라보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다시 말해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면 우파, 반대하면 좌파라는 것이다.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가 봉은사 전 주지 명진 스님을 두고 ‘강남 부자 절에 좌파 스님을 둬서 되겠느냐’고 말했을 때 그 ‘좌파’ 역시 한나라당에 가깝지 않음을 지칭한 것이다.

 세상을 이렇게 읽다 보니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나 한나라당에 대한 싫은 소리 모두 ‘좌파’들이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국민 다수와 집권 세력 간 인식의 간극은 이렇게 벌어지게 된 것이다. 정치적 반대자를 좌파로 낙인찍고 비판하는 것은 한나라당이 야당이던 시절 진보 성향의 정부를 공격하고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서는 유용했을지 모르지만, 집권 이후에는 자신의 발목을 묶는 덫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전 노무현 정부를 이념적 편향이 강하다고 비판하면서 집권 후 실용 정부임을 강조했지만 현 정부 역시 어느 순간 이념적 틀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이렇다 보니 집권 세력은 국민 생활과 직결된 주요 정책에 대해서도 공허한 이념의 틀로 판단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 최근 한나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감세 논쟁도 그 예가 될 수 있다. 보수가 주장하는 감세 정책은 성장을 통해 경제적 파이를 키워 궁극적으로 고용을 늘리고 사회적 분배의 양을 증대시키자는 것인데, 지금처럼 고용과 분배가 수반되지 않는 성장의 환경에서조차 원래 우파는 감세, 좌파는 증세라는 도식적인 이념 틀로 접근하는 모습은 국민의 절박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지한 자세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무상급식 역시 또 다른 예가 된다. 좌파이기 때문에 무상급식을 주장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집권당이라면 무상급식의 문제가 제기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을 것이다.

 좌우 이념과 관련해 보다 예민한 대북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집권 세력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불만을 갖는 이들은 좌파이거나 심지어 종북(從北)주의자이기 때문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으로 인해 비롯된 남북의 군사적 긴장 고조와 그로 인한 안보 불안이 싫거나, 혹은 우리가 나 몰라라 하는 사이에 중국이 북한에 경제특구를 건설하기로 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모습이 불안해 대북 강경정책에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순간 모두 좌파가 되는 것이다.

 몇 해 전 정치권에서도 널리 읽힌 책 가운데 조지 레이코프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이 있다. 레이코프는 이 책에서 정치적 언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규정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치 세계에서 ‘프레이밍(framing)’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치적 언어는 그에 상응하는 프레임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읽고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좌파, 우파라는 정치적 언어가 한나라당과 집권세력이 이념의 프레임에 갇혀 버리게 만드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자주 지적돼온 정치적 소통 부재의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념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보니 민심을 제대로 읽거나 이에 적절히 대응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에 가장 시급한 일은 갇혀 있는 이러한 이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한나라당이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