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컴퓨터·인터넷 경영은 섬세한 손으로" -美 기업에 여성CEO 돌풍

중앙일보

입력

최근 미국에서 여성 최고경영자(CEO)돌풍이 거세다. 남성들이 독점하다시피했던 '코너 오피스' (중역실)에 여성들이 속속 진출하고 있다.

산업의 무게중심이 제조업에서 정보기술로 이동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경영인의 덕목이 남성에게 유리한 조직 장악력과 대외 정치력에서 창의력과 유연한 사고 쪽으로 바뀐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 늘어나는 여성 CEO〓뉴욕의 인터넷 벤처기업인 인포로켓은 지난 11일 월트디즈니와 인포시크 그룹의 합작사인 고 네트워크에서 수석 부사장을 지낸 베스 하거티를 CEO로 영입했다.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언어인 HTML을 대체할 차세대 언어로 각광받는 XML 개발업체인 미국 님블닷컴도 같은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익스플로러 영업책임자로 있었던 수잔 델벨을 CEO로 기용했다.

컴퓨터업체인 휴렛 패커드는 지난해 7월 미국의 상위 20대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인 칼리 피오리나를 CEO로 영입했다. 20여년간 AT&T에서 근무하면서 그녀가 보여준 과감한 경영혁신.대형 프로젝스 수행능력이 보수적인 휴렛 패커드를 개혁시킬 것이란 기대를 모았기 때문이다.

여성 경영인의 약진이 두드러진 곳은 컴퓨터.인터넷 등 정보통신분야와 화장품.금융.광고.미디어 등 전통적으로 여성시장이 큰 분야다.

인터넷 경매업체인 E베이의 CEO 맥 휘트먼,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수석 재무전략가 조이 코베이, 온라인 증권업체인 찰스슈왑의 부회장 다운 레포, AOL의 마케팅 담당 사장 잔 브랜트, 세계 7대 광고사인 오길비 앤드 마더사의 CEO 셸리 라자루스, 파이낸셜 타임스.이코노미스트를 소유한 피어슨의 CEO 마조리 스카디노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비아그라 돌풍을 일으켰던 화이저의 카렌 케이튼, '드레스 캐주얼' 로 인기를 끈 바나나 리퍼블릭의 쟌 잭슨, 바비 인형 제작사인 마텔의 질 바라드 등도 CEO로 활약중이다. 보잉사의 데비 홉킨스는 수석부사장.재정담당이사로 일하고 있다.

◇ 왜 그런가〓우선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맞아 여성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와 분야가 넓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난해말 미국의 대표적 여성 CEO 50명을 선정해 보도했던 경제전문지 포천은 "여성이 남성보다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어 급변하는 기업환경에 훨씬 빠르게 적응하기 때문" 이라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정치력등 대외관계가 기업경영에 중요한 변수였으나 기술.창의력 등 순수한 경영능력이 중시되는 것도 여성 돌풍의 중요한 배경이 됐다.

국제적인 경영자 헤드헌터 업체인 콘 페리의 관리이사 만데라인 콘딧은 "과거 기업이사회는 남성 경영자의 사교장이었으나 경영실적이 갈수록 중요해지면서 여성의 다양한 경험과 사고, 의사결정 방식이 큰 의미를 갖게 됐다" 고 말했다.

캐털리스트는 최근 기업 이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수익성이 높았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여성이사가 최소한 1명이상 있는 기업이 미국 1백대 기업의 경우 96%였지만 1천위권 중소기업들의 경우 5%에 불과했다.

미국 인구의 51%를 차지하는 여성 소비자층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여성 임원의 아이디어가 훨씬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 향후 전망은〓미국 사회의 여성 고급인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여성 CEO의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여성인력 전문 조사기관인 캐털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5백대 기업 가운데 CEO.회장.사장.수석 부사장 등 최고경영자 계층의 직함을 갖고 있는 중역 2천2백48명 중 여성이 5.1%(1백14명)로 1995년(2.4%)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

최고 연봉을 받는 중역 2천3백53명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3.3%(77명)로 95년의 1.2%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체 임원 1만1천6백81명 가운데 여성 이 차지하는 비율은 11.9%(1천3백86명)에 이른다. 아봉 프로덕츠, 콜든웨스트 금융은 여성이 절반 이상이었다.

웹사이트 서비스 업체인 서클닷컴은 지난 13일 미국 여성기업인협회(NAWB0)와 손잡고 여성 전문가 취업알선.교육 등을 담당하는 업무를 새로 시작했다. 이런 추세라면 2064년에는 5백대 기업 중역의 절반을 여성이 차지한다는 게 캐털리스트의 전망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