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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탄생’과 공정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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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MBC의 가수 오디션 ‘위대한 탄생’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지난 6일 방송으로 최종 4인을 남겨놓았다. 유명 가수와 프로듀서가 멘토로 나서 후보자들을 직접 훈련시키는 프로다. 인터넷에서는 6일 방송의 ‘이변’으로 떠들썩하다. 시청자 문자투표의 비중이 높은 가운데 강력한 우승 후보로, 최종심 진출이 무난히 예상됐던 재미동포 엄친아 데이비드 오가 탈락한 것이다. 국내 아이돌계 명프로듀서인 방시혁 멘토의 제자인 그는 세련된 외모의 훈남으로, 그를 제자 삼으려는 멘토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기도 했었다.

 남은 4인에는 옌볜(延邊) 출신 백청강, 패자 부활전에서 기사회생한 손진영 등 김태원 멘토의 제자 3인방이 포함돼 있다. 노래 실력에 비해 비주얼이나 스타성이 부족하고 딱히 내세울 것 없는 배경으로, 처음부터 ‘외인부대’라고 불렸던 이들이다. ‘위대한 탄생’은 그간 아이돌 계보의 스타성 강한 후보들을 가차없이 떨어뜨려왔다. 아직 최종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위대한 탄생’의 진정한 승자는 김태원 멘토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 스스로가 비주류에서 인기 방송인이 되기까지 굴곡 심한 인생을 살아온 주인공이다.

 서바이벌 오디션은 지금 전지구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TV 포맷이다. 치열한 경쟁이 삶의 기본 원리로 자리 잡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해외 오디션 프로들이 경연 그 자체에 집중하거나 막후에서 벌어지는 후보들 간 신경전, 갈등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것과 달리 국내 프로들은 후보들의 개인사와 인간적 연대를 강조한다. ‘위대한 탄생’은 스타 멘토와 후보자 멘티 간의 끈끈한 사제관계를 끌어들였다. 후보들은 서로 적이라기보다 동지다. 친구를 떨어뜨리고 다음 단계에 진출하게 된 미안함으로, 매회 스튜디오는 눈물바다가 된다. 인간의 얼굴을 잊지 않은 경쟁. 한국형 오디션 프로의 특징이다.

 공정한 게임의 룰에 대한 열망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대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 허각은 이미 ‘공정사회’의 심벌이 됐다. 최근 논란을 빚은 MBC ‘나는 가수다’ 역시 ‘약속 파기’라는 반칙으로, 공정한 게임의 룰이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한 대중의 분노가 촉발한 사건이었다.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도 덧붙여진다. 멘토들은 재능 부족 아닌 노력 부족을 질타한다. 게임의 룰이 공정하면 실력대로 승패가 가려지고, 때로는 예술에서도 타고난 재능을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다는 식의 ‘정의’다.

 한국형 오디션 프로들이 이처럼 인간적이고 공정한 룰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현실이 비인간적이고 불공정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방송사들이 전문가 대신 시청자 평가 비중을 높여 ‘대중성=스타성’ 있는 인물을 뽑으려던 의도는 오디션 프로를 통해 정의를 확인하고자 하는 대중의 열망에 의해 속속 의외의 결과를 낳고 있는 듯하다. 한국 사회의 오디션 프로는 스타 탄생의 등용문이 아니라 부족한 정의 실현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허각의 청와대 초청 이벤트나 정부의 ‘공정사회’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느끼는 우리 사회의 정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